독박육아를 반반육아로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정신없는 23년을 보내고 맞이한 겨울방학, 애석하게도 이번 방학은 남편과 접점이 없다. 나는 12.22-1.26, 남편은 1.11-2.29 이렇게 겹치는 구간이 이주 남짓. 여기까지는 괜찮다. 나를 절망케 하는 건.바로 두 아이들 방학이 내 방학시작과 함께라는 것. 고로 남편은 아이들 방학을 모두 피해간다는 사실이다. 피치 못할 일이지만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내 마음은 뾰족해져간다.
다행이도 서울사는 여동생이 아이들 방학시작 날 차를 가지고 내려와 청도에 있는 친정에 함께 가자고 해주었고, 나는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캐리어에 3박4일 짐을 가득 때려넣고 동생에게 의지해 내려갔다.
가는 와중에도 동생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불공평해, 내 방학은 이주나 애들에게 발묶여있고, 나중에 형부 방학하면 오롯이 즐길거아니야“
아직 결혼도 전인 여동생은 웃으며 말한다.
“애를 키우다보면 그런걸 따지게 되나보네, 불공평하긴 하겠다 언니“
친정라이프에 여동생도 함께라 독박에 대한 부담은 덜지만 아무래도 내 자식들이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엔 부산 여행까지 계획해둔 터라 정신없이 보내었다. 다정한 외할아버지에 두 아이들 끼니를 준비해주는 엄마,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아끼고 잘 놀아주는 여동생 덕에 시간을 보내는 건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고비는 바로 두 아이들 씻기기. 늘 남편이 도맡아 왔던 터라 매일 밤 두아이를 씻기고 옷입히는 과정은 여간 품이 드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위험한 행동을 가끔 일삼고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하는 첫째, 마음대로 안되면 땡깡을 부리고 소리까지 지르는 둘째. 두 아이가 만들어내는 성가신 에너지가 가뜩이나 몸이 약한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친정에 와있는 동안 내 양어깨엔 아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돌덩이가 내려갈 생각없이 짓눌러왔다. 친정식구들덕에 무거운 짐은 좀 덜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가뿐하진 않은 상태.시시때때로 속에서방학이 늦다는 죄명을 받은남편을 향한 화가 솟구쳤다.
한 번은 집에서 엄마에게 “너무 불공평해 이번 방학, 내 방학은 이주나 날아가고, 한서방은 방학을 온전히 즐길거아냐”
샐죽해진 내 표정을 본 엄마는 허허 웃으며
“니 새끼들 보는 데 뭐가 불공평하노, 한서방도 좀 쉴때가 있어야 안되겠나”
라며 나를 다독였다.
사실 육아란 반이 똑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사정에 따라 누군가가 더 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가 둘이 되면 그 불공평함이 심화된다. 한 사람의 회식으로 독박을 하게 되면 회식을 통보한 날 부터 날이 선다. 누군가가 더 했다는 그 불공평함이 부부싸움을 낳기도 한다. 치킨반 양념반 처럼 똑 떨어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부산여행 중 해변열차를 타던 중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돌 안된 딸아이를 아기띠에 안고 유모차를 끌고 있는 대여섯살 된 아들을 옆에 나란히 놓고 줄을 선 모습이 보였다. 뭔가 남일 같지 않아 시선이 절로 갔고, 개찰구에서 유모차를 잘 접지 못하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고 유모차를 들어올려 주었다. 머리가 산발이
된 엄마는 나를 향해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 엄마도 지금 마음 속으로 두 아이로 힘든 순간이 닥칠때마다 속으로 남편에 대한 원망만 키우고 있지 않을까? 내심 내 마음을 그 엄마에게 투영해보았다. 집에 가서 퇴근한 남편에게 그날일을 토로하며 날 선 표정을 지어보이려나 하며..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서인지 나와 카톡을 하며 잠이 안온다고 했다. 나와 아이들이 없어서 허전하다며...그러기엔 첫날엔 친구들을 불러 12시까지 송년회하고, 담날엔 회식을, 마지막날엔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었다는 사실. 나는 매일 속으로 화만 눈덩이처럼 굴리며 남편과 재회하는 순간 그 3박 4일 쌓인 눈덩이를 일시에 터뜨리마 다짐한다. 그러다 동생이 “언니 서울 나랑 같이 올라갈래? 라는 한마디에 머릿속에 불이 확 켜지며 불현듯 생각을 바꿔먹기로 한다. 이렇게 가닿지도 않을 화만 굴리느니 고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자유를 주고 나도 합법적 자유를 받으리라. 그때부터 남편에게 보내는 카톡 메세지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망의 마지막날. 한달같은 나흘을 보내고, 두 아이와 3박 4일 분의 짐이 담긴 분홍색 캐리어를 남편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인수인계 한 후 나는 몸만 챙겨 여동생과 서울로 홀홀 단신 떠났다. 평소같았음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보냈을 텐데 지난 3박4일을 빚갚는 심정이라 그런지 결연하게 나를 보내주었다.
금요일이라 차로 5시간 넘게 걸리는 시간도 그저 혼자라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견뎌냈다. 당분간 내 양어깨를 뭉근히 누르던 아이들을 잠시 내려놓았단 사실만으로도 나는 금방이라도 하늘을 날 것 같은 착란이 일었다.
그 다음날 눈 오는 한남동 투어에 눈 돌아가고, 아침 일찍 간 사우나에서 두시간을 느긋이 보낸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간간이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그간 섭섭함, 고됨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육아 지분이 다시 반반이 되어가며 정상 궤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차를 끌고 서대전역으로 두 아이를 데리러 온 남편에게 덕분에 너무 좋았다고 눈웃음으로 화답하고, 그날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와 엄마가 준 갈비구이로 간만에 네 식구의 단란한 저녁식사를 즐겼다.
치킨반 양념반 같이 딱 떨어지는 육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측불가한 일에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인생인데 육아도 예외란 것이 없기에.. 하지만 한쪽으로 너무 치우칠 땐, 양념을 더 뿌려주던, 사이드를 더 시켜서 보완해주던. 보완의 방법으로 해결해주면 된다.
한 사람이 독박했을 땐, 다음날 한시간이라도 자유를 요구하고 상대방은 기꺼이 허락하기. 그러면 똑 떨어지진 않지만 반반 궤도에 정상진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과정이 순조로이 이루어진다면 독박육아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다음에 자유부인을 흔쾌히 승낙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가뿐해질지도 모를일이다.
두 아이와 함께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서 산 간식으로 허기 채우기. 먹어도 먹어도 마음의 허기는 안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