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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an 05. 2024

함께한 시간의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주간의 아이의 방학이 내게 남긴 인생의 중요한 교훈

 내 방학과 동시에 개막한 서진이의 방학이 이주라는 지난한 시간을 보낸 뒤 오늘로서 대망의 막을 내렸다. 방학동안 나는 서진이에게 “하지마”,“엄마말 잘 들어야해”,“동생 울리지마”를 골백번도 더 한 것 같다.

 쉼없는 한 학기를 보내고 꿀맛처럼 주어진 방학을 아이들에게 이주나 헌납해야 한다는 사실에 방학시작부터 내 마음은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 무거웠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난 이주간 까칠한 서진이의 엄마로 지내왔다.

 친정에서 한 주를 보내다시피하며 두 아이를 데리고 부산여행도 다녀왔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서아에 비해 방학이 한주가 더 긴 서진이와 매일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쏘다녔다. 영화는 세편이나 보았고, 기차타고 연산역엘 다녀오고, 세차를 맡기는 동안 키카에서 3시간을 보내며 매일을 바쁘게 보냈다.

 돌아보니 표면적으론 아이를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알맹이는 쏙 빠진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시간을 보내고자 밖으로 다니며 보이는 서진이의 일련의 행동들이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갑자기 고성을 지른다던지, 혼자 멀찍이 뛰어나가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던지, 뽑기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한다던지, 집에서 과자를 먹으며 부스러기를 잔뜩 흘려놓는다던지. 무릇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게 하는 그 나이때 행동들.

 하루종일 붙어있으며 그런 행동을 오롯이 겪어내며 쌓이는 스트레스는 매일 눈덩이처럼 커져갔고 급기야는 한번씩 터져나와 서진이에게 온갖 짜증의 감정을 분출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서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책에 집중하거나 휴대폰을 보는 등 아이의 말에 온전히 집중해주지 못했다.

 한 번은 세차를 맡기면서 머물곳을 찾다 키카에서 한시간쯤 머무르게 된 날이었다. 서진이는 젠가릉 가지고 와 테이블에 놓고는 나와 놀기를 청했다. 그러고보니 방학동안 둘이 보드게임을 한 일이 없었다. 나의 큰 그림은 키카에서 혼자서 놀게하고 책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워낙 빠른 시간이기도 해서 키카안엔 형제로 보이는 두명의 아이만 보였다. 하는수없이 둘이 나란히 앉아 젠가를 했다. 조심스레 탑을 쌓고 번갈아가며 나무조각을 빼는데 오랜만에 해서인지 어느새 나도 빠져들어 집중했다. 서진이는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웃으며 재밌다고 말했고 승부욕 강한 아들이 어쩐지 자기 차례에 탑이 무너져도 배시시 웃기만 했다. 갑자기 가슴에 무언가 탁 걸린 느낌이었다. 맨날 집에 있으면 힘들다는 핑계로 나가기만 했지 이렇게 둘이서 집중해서 놀이한 적은 처음이라는 사실이 불현듯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서진이의 표정을 한동안 바라보고선 한 번 더 할까? 물음에 놀고 온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선 같은 또래의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더니 예정보다 2시간을 더 놀고 키카를 빠져나왔다. 그래서 내겐 예정에 없던 자유시간  두시간이 주어졌고 덕분에 산지 이주가 넘은 책 스무페이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제는 또 학교 출근으로 인해 서진이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헐레벌떡 데리러온 내게 엄마 해준 음식 남기면 속상할까봐 배 불러도 꾸역꾸역 다 먹었단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엄마 계단 걷기 운동 좋아하니까 걸어가자고 의기양양하게 제안하며 둘이서 숨을 헐떡이며 18층 까지 걸었다. 그러고선 하는 말, 다리아픈데 엄마 운동하라고 같이 걸었다고. 그뿐만 아니었다. 그날 밤 친구네 놀러갔다가 오는 깅에 피자빵이 먹고 싶다고 보채길래 집에 아빠 주려고 사논 거 있다고 가서 먹으라고 하며 달랬는데 정작 집와서는 아빠 먹고 싶을 것 같아 자기는 요플레를 먹겠다고 한다. 결국 아침까지 남은 피자빵은 아빠의 아침이 되었다.

 이주간 나는 서진이를 내 방학 이주나 훔쳐간 도둑?취급을 하며 알게 모르게 말투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었는데 서진이가 어제 한 말과 행동들에 자연히 고개가 숙여졌다. 엄마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주였는데 늘 나는 부정적인 말로 서진이를 제한해왔다. 물론 꼭 필요한 훈육도 있었지만 좀 더 다정하게 굴고 집중해서 서진이와 놀아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 나는 못즐기는 내 방학에 대한 애통함만 부풀렸던 것 같다. 그래서 어젯밤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괜스레 미안해져서 이마를 몇번이나 쓰다듬었다.

 서진이는 그 나이때 아이들이 그렇듯 어른처럼 감정조절이 어렵기에 내게 짜증을 내거나 갑작스런 행동을 내보였을 뿐이지, 저런 말들을 하며 배려하는 걸 보면 어쩌면 나보다 마음의 평수가 더 넉넉한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의 나쁜점만 꼬집고 칭찬엔 인색했던 나, 갑자기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어젯밤, 서진이에게 방학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뭐야? 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외할아버지 집가서 놀고 부산놀러간 거“

친정에 가서 이모와 외할아버지와 도란도란 놀았던 기억이 아이에겐 가장 의미있었던 날인가보다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미안함도 들었다.

 미래의 나는 늘 말한다. 지금 엄마 찾을때 마음껏 사랑해주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주라고. 하지만 현재의 나는 자꾸 그말을 귓등으로 흘러듣는다.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오롯이 받고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감기한은 생각보다 짧다. 곧 있으면 초등학생이 되고 친구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을 알기에 이 시간이 더 없이 중요한 것을 되새겨야한다. 키카에서 도란도란 앉아 아이와의 시간에 빠져든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며 이번 주말엔 서진이와 우봉고 놀이를 하며 그때의 그 웃음을 다시봐야지

 늘 그렇듯 반성과 성찰로 점철되는 육아일기..그래도 성찰의 기회는 주니까 그것도 의미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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