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주제는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에서 찾는 소소함
내가 글쓰기를 게을리할때면 브런치 앱에선 늘 이런 문장을 보내온다.
“글쓰기는 운동과도 같아서 매일 한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이 필요하답니다“
생명도 없는 그 문장이 꼭 학창시절 엄마로 빙의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하는 느낌이라 등떠밀리듯 브런치앱을 켠 뒤 엄지로 글쓰기버튼을 누른다. 호기롭게 시작해보지만 늘 첫 문장에서 막히고야 만다. “무슨 주제로 글을 쓰지?” 스스로에게 내던지는 그 물음은 글쓰기에 브레이크를 당긴다.
매일 일터인 학교 집을 쳇바퀴돌듯 반복하고 집에선 육아 살림의 연속인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 그 삶속에서 글쓰기의 주제를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매주 금요일 일기장에 일기숙제를 내주면 우리반 아이들이 “선생님 쓸게 없어요”라고 습관적으로 내뱉는 그 말이 십분 이해가 된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 누군가의 마음을 울려 조회수를 높이려면, 가끔 송고하는 오마이뉴스에 기사거리가 되려면 뭔가 특별한 주제가 필요할 터. 매일 글을 쓰고 싶지만 그 “특별함”이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때문에 늘 브런치앱을 켰다가 슬그머니 종료버튼을 누르고야 만다.
그러던 어느날, 친정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내 눈에 노랗게 빛바랜 낡은 일기장 너댓권이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펼쳐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 내 유년시절의 기록. 내용이 너무 하찮고 소소해 피식 웃음마저 났다. 엄마가 김치를 넣은 떡볶이를 만들어주셨는데 맛있어서 두 접시 먹었던 기억.급식시간에 맞은 편의 남자아이가 똥얘기를 해서 입에 있던 반찬을 뿜어서 난감했던 기억. 엄마의 심부름을 성공적으로 해내서 기뻤던 기억 등. 그 나이때 아이가 삶에서 마주한 소소한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었다.
그냥 넘겼다면 바로 휘발되었을 그 작은 이야깃거리들이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두니 의미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그 당시 우리를 위해 많은 요리를 해주셨구나. 우린 떡볶이를 좋아했네. 그 당시 내 단짝이름은 00이었구나. 등 그 시절의 일이 바로 어젯일 처럼 눈 앞에 그려졌다.
일기장을 읽어내려가며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스쳤다. 초등학교 시절 소소한 경험들이 일기장의 한페이지씩을 차지하며 의미있는 일로 남았듯 지금의 나도 매일 마주하는 삶의 소소한 경험을 글로 남기면 매일 흘러가는 하루가 좀 더 의미있게 남지 않을까 하고.
언젠가 늦게 퇴근하고 장볼 시간도 없이 저녁을 준비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배고프다는 두 아이의 성화에 냉장고 곳곳에 쑤셔박혀있던 식재료들을 마구잡이로 꺼내놓았다. 한주먹남은 대패삼겹살, 파 한쪽, 두세알 남은 달걀, 반쯤씩 남은 양파 당근, 콩나물 한 줌. 재료들을 도마위에 가지런히 정렬하고 씻고 썰고 정성스러운 다지기의 과정을 거친 뒤 대패와 파를 볶고 나머지 야채 그리고 계란을 풀어 넣고 식은 밥을 볶고 굴소스를 넣은 뒤 완성해냈다.
이름하야 대패삼겹계란야채볶음밥. 이름도 희한한 이 정체불명의 요리를 미심쩍은 얼굴로 식탁위에 놓았으나 결과는 대성공. 남편과 두 아이들은 남김없이 싹 긁어먹었고 내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보면 글쓰기의 재료도 그런게 아닐까? 기억 속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박힌 소소한 일들을 마치 냉장고 털이하듯 꺼내어 필요없는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정성스레 손질하고 다듬다보면 한 편의 근사한 글 한편이라는 요리가 완성되지 않을까? 소재가 아무리 하찮아보여도 그 소재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교훈이나 얻을 점을 찾아내다보면 더없이 훌륭한 글이 될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평범하다, 하찮다,소소하다고 치부하고 흘려버리는 대신. 촉수를 곤두세워 그 하루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들려오는 이야기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들을 기억 속 냉장고에 담아두고 글을 쓸때마다 하나씩 꺼내어 생각의 살을 덧붙이는 조리과정을 통해 멋진 글 한편으로 요리해내는 것.
더 이상 특별함이라는 장벽 앞에서 글한편을 쓰려는 의지가 가로막히기 전에 부단히 내가 해야할 노력이다. 그러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어제와 다른 점을 찾고, 오늘을 살며 내가 만난 사람들. 나를 기분좋게 해준 따뜻한 말들. 감사한 일 등의 소재를 부지런히 모아가야겠다.
설날을 보내며 오늘은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과 선물. 추억. 따듯한 말들이 기억 속 냉장고에 가득 차있다. 하나씩 글로 풀어내며 그 일들이 납작해지지 않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