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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패스트 라이브즈

시절 인연,

by Choi 최지원

좋은 영화는 여러 번 본다.

그리고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낀다.

처음엔 해성을 떠나보내고 로라를 말없이 안아주는 아서의 모습이 짠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남편이 첫사랑을 보내고 운다면, 나는 그 모습을 견딜 수 있을까?’


아서가 무지 불안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장면은 달랐다. 아서의 품은 불안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느껴졌다. 그 믿음의 단서는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있다. 해성을 만나고 돌아온 로라는 들뜬 아이처럼 그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자 아서는 묻는다. “그에게 끌려?”
로라는 대답한다. “그는 내가 울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야.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었던 사람.”

하지만 지금 로라가 울 때, 그녀 곁에 있는 사람은 아서다.


나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을 믿는다. 불교에서 온 말인데, 모든 관계에는 그에 어울리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추억을 이야기할 땐, 그가 나의 과거를 함께한 ‘시절 인연’이었음을 느낀다. 반면, 오늘을 살아가며 내일을 함께 그려갈 사람은 그 시절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함께 걸어가는 인연이다. 해성은 로라에게 그 시절의 인연이었다. 그러나 아서는 그 시절을 품고 미래로 함께 나아갈 인연이다. 그래서 아서는 과거를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로라의 슬픔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두 번째로 영화를 보고 앞선 질문에 답이 달라졌다. 나와 만나기 전의 시간을 채워준 인연이라면, 그리고 그 시간을 거쳐 지금의 그 사람이 되어 내게 왔다면, 비록 달갑지 않더라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로라도 해성을 잊지 못해서 운 건 아닐 것이다. 그와의 감정을 끊은 방식이 모질었어서 더 이상 추억을 쌓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인연은 그 시절에 맞는 의미가 있다. 그 시절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성숙함과 노력이 필요하다. 스쳐 지나간 인연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지금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현재이자 미래일 거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결혼은 전생에 8000겁 (만난) 인연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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