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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픽사, 위대한 도약 - 로렌스 레비

To infinity and beyond!

by Choi 최지원

이 감동을 어디서부터 적어내려가야 할까.

픽사의 역작 토이스토리의 감흥을 느끼고 싶어, 조카가 잠든 사이 조카 놀이방에서 책를 끝마쳤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보다 먼저 태어난 토이스토리 1을 다시 보았다. 로렌스 레비가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막히는 도로를 굽이 굽이 지나, 시골 마을 포인트 리치먼드에 도착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픽사의 상영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우디와 버즈 라이트이어를 처음 보며 느꼈던 벅찬 감동을 느끼며..!


이 책은 정유 공장 맞은편의 특별할 것 없는 건물 안에서(픽사 사무실), 어떤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마법을 픽사 답게 고수하며 오늘날의 선구 기업이 되기 위해 CFO 로렌스 레비가 악전고투 속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담고 있다.


나는 요즘 자주 퇴근하고 신논현 교보문고를 휘휘 돌며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온다. 책을 빌려 읽지, 잘 사지 않는데 어쩐지 이 책은 사서 읽고 싶어 단숨에 골라 결제를 했다. 그날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하며 읽는 내내 픽사의 일원에 된 느낌으로 재미나게도 읽었다.



서의 말미에는 '중도'라는 개념이 나온다. 로렌스 레비가 더 이상 본인의 역할이 필요치 않을 만큼 픽사를 성공시킨 뒤 회사를 나와 동양철학을 배우며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비즈니스 스토리와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중도’라는 개념은 오히려 픽사라는 회사를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키워드 같았다.


p. 342 중도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 내면에 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한 명은 관료이고, 다른 한 명은 예술가 혹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관료의 역할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이다. 제시간에 일어나고, 공과금을 내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관료는 안정성과 규칙을 좋아하고 효율성과 성능을 가치있게 여긴다. 우리 안의 예술가 혹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는 기쁨, 사랑, 모험, 즉흥성, 창의성, 깊은 유대감과 살아있다는 느낌에 관심이 많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는 우리가 종종 허우적대고 있는 관슴과 기대치를 바다에 벗어나고 싶어 한다. 중도의 통찰은 이러한 두 가지 상태 중 어느 쪽이든 한쪽에 고착되면 필연적으로 좌절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 중도는 이 두 가지 측면을 조화시키는 데서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고 주장한다.

픽사는 예술성과 사업 전략 사이에서 끝없이 균형을 맞추려 애쓰며 온갖 위험을 감수해왔다. 그 자체로 진정한 중도를 실천한 사례가 아닐까. 레비가 잡스에게 픽사의 CFO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픽사의 내부 상황은 마치 지각판들이 높은 압력을 받아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산맥을 밀어 올리는 모습과도 같았다고 한다. 하나의 지각판은 스토리텔링에서 예술적, 창의적 탁월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것이고, 또 하나의 지각판은 재무, 비즈니스 리스크 등 현실적인 생존의 압력에 놓여 있었다. 창작의 완결성과 현실적인 필요 사이의 갈등, 그리고 갈등을 극복해나가며 성숙해져 가는 레비와 잡스의 우정 이야기.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p.28 에드와 나눈 대화는 즐거웠다. 그는 첫 만남이라고 해서 적당히 말을 가리거나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기회가 도무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픽사는 이리저리 배회할 뿐 한 번도 제대로 길을 찾은 적이 없는 회사 같았다. 16년 동안이나 고전을 면치못하고 소유주의 개인 수표로 매달 월급을 주는 회사에 합류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최고재무책임자가 되면 스티브에게 가서 매달 그 돈을 받아 와야 할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건 그다지 신나는 일 같지 않았다.

무려 스티븐 잡스가 로렌스 레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픽사의 CFO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밑져야 본전으로 픽사 사무실로 찾아간 그는, 픽사의 재정 환경을 듣고 반감이 일기 시작한다. 픽사는 현금도 예비비도 없이, 그저 변덕스럽기로 소문난 잡스 개인의 즉흥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자금으로 버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CFO 자리를 덜컥 수락하는 게 과연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결정인지, 레비는 선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p.39 존, 에드와 함께 거기 앉아 있자니 그날 하루의 경험이 갑자기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두 리더는 상업적 성과나 명성을 거의 얻지 못한 채 수년간 작품에 몸 바쳐 왔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혹은 어디서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바로 승자라는 사실이었다. 그 승리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알 수는 없어도, 왠지 그들이 승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토이스토리 앞부분을 보고 난 레비의 심정.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사실 토이스토리를 10분만 봐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비루한 환경과 불안정한 자금 상황이지만 역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숫자와 데이터가 아니다. 내러티브일 뿐.


p.148 마지막으로, 픽사가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확실히 자리 잡으려면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릴 필요가 있었다. 디지느와의 현 계약 조건으로는 디즈니가 모든 관심을 독차지 할 것이고, 슬프게도 픽사의 그 영화의 실제 제작팀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토이 스토리>의 포스터에는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토이 스토리>를 소개합니다."라고 적혀있거나, 더 심하게는 "디즈니의 <토이스토리>"라는 문구에 픽사라는 이름이 작은 글씨로 들어가는 수준이 될 게 뻔했다. 이 경우 세상 사람들이 픽사를 제작과 연관 짓기가 어려워진다. "픽사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바꿔야만 해요." 어느 날 저녁 픽사의 브랜드에 관해 논의하던 스티브가 말했다. "디즈니가 주목을 받더라도 이 영화를 만든 건 '우리'라는 걸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요. 브랜드 없이 회사를 키울 수는 없죠." 픽사를 브랜드로 전환하는 것, 그게 우리 계획의 네 번채 축이었다.

당시 픽사는 디즈니와 공동 제작 계약을 맺고 있었고, 디즈니가 배급권과 IP를 보유한 관계였다. 픽사는 제작, 디즈니는 배급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협력 구조였지만 계약 대로라면 픽사의 몫과 공은 디즈니라는 거대 기업 그림자에 가려질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토이스토리의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만드는 것 외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해야만 했다. 식은 죽 먹기였다. (^^)

우리 몫의 수익을 4배로 늘린다.

제작비로 쓸 자금을 적어도 7천 5백만 달러 확보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영화를 만든다.

픽사를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든다.


p.200 "훌륭하네요." 해롤드는 말했다. "아주 마음에 들어오. 픽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이미 하고 계시네요." '뭐라고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갑옷으로 무장했는데 날아드는 화살촉이 하나도 없다니! 오히려 해롤드는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이고 쾌할하며 우호적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기술은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거대한 원동력이죠." 해롤드는 설명했다. "앞으로는 훌륭한 스토리, 혁신적인 기술, 노련한 경영진을 접목한 회사가 선두를 달릴 겁니다. 픽사는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요. 제 말을 믿으셔도 좋아요. 이런 경우는 드물어요. 저도 이 일에 함께하고 싶네요. 어쩌면 카우언이 픽사의 IPO에서 일익을 담당할 수도 있겠고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픽사의 탈출구는 IPO였다. IPO 주관사를 찾기 위한 레비와 잡스의 여정이 흥미진진하다. 잡스는 당시 애플 내부 권력 다툼 끝에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이사회의 지지를 잃고 사실상 쫓겨났기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주관사만 고집했다. 픽사의 상장으로 재기를 도모하는 그의 욕망이 들어났다고 할까? 하지만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에게 모두 거절 당하자, 레비가 그간 업력 동안 쌓아왔던 우정을 바탕으로 비교적 명성이 덜한 주관사들에 터치하기 시작한다. 거절만 당하던 찰나, 픽사 가치를 알아주는 주관사를 만난 감격스러움에 이 문구를 담아왔다.

Robertson Stephens

Cowen & Company


잠시나마 VC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만약 내가 벤처기업에 투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할까? 생각해봤는데, 답을 다시 떠올려보면 대단한 혁신보다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스토리와 패기 있는 경영진이 있다면 나는 투자를 할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사람의 마음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하니까!


p.231 첫 거래일 종가 기준으로 픽사의 주가는 39달러였다. 덕분에 픽사의 시가총액은 15억 달러 가까이에 이르렀고 스티브는 그야말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Final Result!

시총가 22달러에서 당일 종가 39달러, First-day return이 +77% 셈! 엄청난 IPO pop이다. 짜릿해


p.235 어차피 IPO는 우리가 기술한 네 개의 축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밖에도 픽사의 산출물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영화 수익에서 우리 몫을 대폭 확대하며, 픽사라는 브랜드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픽사는 안정적인 궤도에 도달했따고 보기 어려웠따. 그래도 나는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잡스도 IPO나 제품 런칭 때 잠깐 기뻐하곤, 금세 “자, 다음은 뭐지?” 모드로 전환하는 사람이었다던데, 레비도 역시나.. 일시적 성공에 오래 머물지 않고 지속적 실행으로 빠르게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이 멋졌다.

p.302 이 영화의 제작을 지원해 준 모든 픽사 직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픽사의 재무, 마케팅, 행정 부서 전 직원들의 이름이 나타났다. 픽사에서 겪은 이런저런 일 중에서 이거 처음으로 보았을 때만큼 흐뭇했던 순간도 드물다. 그 후 모든 픽사 영화에서 하나의 전총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면서 더욱 의미가 깊어졌다.

레비가 픽사에서 보낸 첫 2년 동안 픽사의 IPO, 디즈니와의 재협상, 창작 통제권에 대한 결정, 스튜디오 조직 구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중대한 프로젝트들이 분주하게 진행되었고 그는 해냈다. 그런데 그중 사소해 보이는 사안 하나가 특별히 그의 이목을 끌었고 열정을 발동시켰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픽사 영화를 넘나들며 일한 사람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영화 창작에 관여한 제작진 뿐만 아니라 재무, 인사, 시설 그 밖의 행정을 지원하는 이들 모두. 디즈니는 관리직 직원들의 이름을 영화 크레딧에 올리지 않는 내부 방침을 지키기를 원했다. 디즈니의 마지막 협상책으로 픽사 임원들만 크레딧에 올리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이래 저래 결국 픽사의 임원들 중 레비만 크레딧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는 괜찮았다. 자신 한 사람의 공을 알리는 것보다 모두의 공을 기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멋진 리더다.




침대에 누워 조카 초이 놀이방에 있는 장난감들이 이모가 새로운 장난감을 사와 초이의 관심을 잃을까 걱정하는 반상회 장면을 상상하다 호기심에 슬금 놀이방을 둘러보았다. 말도 안 되는 상상.

알 거 다 아는 서른인 나에게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든 픽사의 스토리와 연출력은 실로 엄청나다. 픽사의 고유한 색채를 지키기 위해 애쓴 수 많은 직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토이스토리 2를 마저 보러 가야겠다.

PIXAR, To infinity and beyond!



To infinity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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