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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청춘의 독서 - 유시민

by Choi 최지원

책 선물은 날 항상 들뜨게 한다. 어느 선물보다도 기대된다. 유시민 선생 말씀처럼 책만큼 귀한 문화유산이 달리 또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책 선물은 선물하는 이의 인생이 오는 것과도 같다. 어느 부분에서 감탄했는지, 어떻게 삶에 녹였는지, 그리고 왜 나에게 이 책을 주었는지 삼박자를 떠올리며 책을 읽노라면 선물한 이와 보이지 않는, 그러나 꽤나 끈적한 유대감을 쌓은 듯하다.


존경하는 선배가 서른 살에 읽고 헉, 하며 본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다는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를 선물해 줬다. 선배가 경탄했다던 그 나이, 서른 인 나에게 이 책은 어떤 영향을 줄까? 기대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 한아름 안고 책을 읽었다.

(요즘.. 책 읽을 시간이 부쩍 줄어들어 이 300p 남짓한 이 책을 한 달가량이나 붙잡고 있었다. 반성한다ㅠㅠ)




책을 총평하자면,

유시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준 고전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에 대한 독자로서 유시민 작가의 감상을 담은 일종의 감상문이다. 위대한 고전에 따른 유시민 작가의 깊은 고찰과 개성 어린 취향이 드러나는 책이다. 알쓸신잡에서 날카롭고 소신 있는 말솜씨로 똑똑한 분이라 생각했지만, 이번 책을 통해 한층 더 깊은 존경심이 생겼다.


특히 349p 후기에 쓴 글을 보고 더욱이 존경스러운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나이가 들었고 시대도 변했으니 그때와는 무언가 다르지 않을까? 남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더 공부하고 더 배워야 하지 않을까?'

조승연 작가가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직접적인 훈육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뒤로 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나는 같은 맥락으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배움에서도 환경이 갖춰져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 배움의 길로 가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바라던 어른을 만난 것 같았다. 역시나 자신만의 의미로 인생을 채워온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유쾌한 일은 없다. 유시민 선생이 내뿜는 지성의 향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p.32 -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표도르 도스토엡스키, 죄와 벌]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엡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죄악을 저지름으로써 어떤 선한 목적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학창 시절 토론 주제로 꽤나 여러 번 다루었던 주제인 듯하다. 나는 도스토엡스키와 마찬가지로 감히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내면의 도덕적 기준과 죄책감에서 도망칠 수 없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선한 목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살인을 저질렀지만 이후 정신적 파멸에 가까운 고통을 겪은 것처럼 선한 목적이라해도 악한 수단은 결국 인간을 무너뜨린다.



p.200 - 슬픔도 힘이 될까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알렌산드르 솔제니친]
다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면서,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다 견디고 내마음에 남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국 남은 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업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럼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솔제니친과 소련 국민을 가두고 죽였던 강제노동수용소와, 그런 야만적 장치를 불가결한 구성 요소로 보유했던 사회 체제는 이제 사라졌다. 아득히 머나먼 역사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지고 나서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결국 변하지 않고, 남는 것은 사람의 모습이라는 말을 십분 공감한다. 극한의 고통과 부조리, 억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누군가의 모습. 그 덕분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p. 247 -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똑같은 생활환경의 변화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사회제도에 대해 더 넓고 깊게 이해하고 성찰하는 지성적인 사람일수록 더 유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뇌 활동이 활발하고 많이 배우고 다양한 문화를 폭넓게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진보적일 수 있다고 본다.

한편으론 사람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관성이다. 누구나 변화를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변화 초기에는 불편함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필요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며라도 일어나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베블런이 말한 대로, 상류계급은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과시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기존 질서와 관습을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발전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진보해야 한다. 더 깊이 사유하고, 더 많이 배우며, 더 다양하게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306 -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린다면,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비추어 보아야 이해할 수 잇으며, 현재 역시 과고의 조명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유시민 선생은,

역사적 사실 그자체로 스스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회와 개인,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립과 상호작용에 대해 역사가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서는 현기증이 밀려왔다고 한다. 나 또한 카의 견해에 공감한다. 글로 집필된 역사란 역사가의 주관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현재에 비추어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카의 말마따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대의 역사는 현대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역사를 이해하려면 현재의 시각이 필요하고, 현재도 과거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진보라는 것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성찰하는 과정 아닐까?




나는 책과 인연은 필연이라 생각한다. 우연처럼 다가왔지만 항상 좋은 깨달음을 주기에 결국은 필연이 되고 만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이 책을 만난 것도, 벤지가 선물을 해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결국 좋은 책과의 만남은 그 책을 선물한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과 같다. 그 끈을 따라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엮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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