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is Survival
Survival of the Fittest, 환경에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삐-! ❌
Writing is Survival, 기록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정답-! ⭕️
기록이 자산이 되는 시대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수세기 전 산업혁명부터 그래왔다. 18세기부터 생산의 승패는 문헌화된 지식, 바로 "기록"이 이끌었다. 테일러는 노동의 가치를 기록으로 재정의 했다. 숙련공 개인에 의존하던 감각과 경험을 관찰하고, 쪼개고, 측정하고, "기록"해서 관리 가능한 기술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노동의 가치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가"로 바뀌었다.
기록하지 않은 커리어는 자산이 되지 않는다.
한기용 님 커리어 코칭 세션 20기를 듣고 있다. 옳은 커리어를 가고 있는지, 내가 정의하는 옳음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하긴 나도 벌써 사회에 나와 내 힘으로 돈을 번지 어언 7년이다. 중간 점검 할 때가 됐다. (커리어의 반에 반, 반에 반의 반, 반에 반의 반의 반,^^?) 지인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됐고, 마침 좋은 타이밍에 서울 오프라인 밋업에도 참석했다. 이미 과정을 수료한 선배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이 선택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긴 호흡으로 나답게 옳은 커리어를 가려면, 걸어온 길부터 되돌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커리어 회고 시리즈 글을 써보련다.
시리즈 글이 될 것 같다. 7년간의 에피소드를 날 것 그대로 적어보니 자연스럽게 다섯 개의 키워드가 뽑혔다.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의 커리어를 되짚어보려 한다.
1. 간절함은 강점이다.
2. 최고의 자산은 인적 자산
3. 선한 영향력(Pay it Forward)
4. 일이 되게 만드는 오너십
5. 그리고 앞으로의 나와 팀 -
지금 나의 팀 리드는 나를 두고 “적극성이 최고의 재능인 인재”라고 표현해 주셨다.
맞다. 나는 마음먹으면 해야 하는, 하고야 마는 성향을 가졌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더욱이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꽤나 간절한 시절을 지나고 있었다.
2024년 7월, 티메프 사태가 터졌다.
나는 21년 7월부터 24년 6월까지 티몬 제휴사업팀에서 MD로 일했다. 첫 직장이었고, MD로서 한 달 매출 10억 이상을 낼 만큼 성과가 좋았고, BYD EV트럭을 이커머스 최초로 론칭하는 신사업을 기획하기도 했다. 머나먼 전라도에서 상경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었기에 애정도 책임감도 컸다.
그런데 23년 말부터.. 회사가 이상했다.
우리 팀에 주어졌던 미션은 이커머스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되는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미션은 사라졌고, 대신 상품권 판매로 거래액만 만들라는 지시가 반복됐다. 동시에 판매자 대금 정산 주기가 점점 늘어졌다. 오늘은 정산이 나간다는 지침이 내려와 파트너사에 안내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어렵다는 말로 번복되곤 했다. 이런 이상한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이러다 정말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연 거래액 6조를 만드는 커머스가 어떻게 한순간에 망하겠어.”, “커머스는 망하지 않아.” 모두가 그렇게 호언장담했다. 거래액 규모와 달리 현금 흐름 문제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조직 그 누구도 이러한 상황을 투명하게 공유해주지 않았다.
티메프 사태가 뭐냐면요..
2024년 7월, 티몬과 위메프를 운영하던 티메프 그룹이 판매자 대금 정산을 중단, 지연하며 자금 유동성 위기가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 티몬과 위메프는 구매 후 최대 60일이 지나면 판매자에게 구매대금을 정산해야 하는데, 만기가 도래하자 현금이 없는 큐텐 측에서 계열사 상품권을 급하게 팔고 자금을 수혈해서 롤오버를 시켜 정산금을 지불.
요약하자면 자사와 계열사가 판매자에게 정산해줘야 하는 돈을 구하자고 고객 돈으로 돌려 막기를 한 것.
환경보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 건, 당시 리더의 말씀이었다.
이렇게 안주하다간 앞으로 3년, 5년이 지나도 실력은 쌓이지 않은 채 몸만 무거워질 수도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회사 밖으로 나왔을 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결국 만족스럽지 않은 회사에 떠날 수 없어서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었다.
큰돈을 버는 것보다 참된 성장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만족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 걱정을 혼자 끌어안는 대신, 이 고민을 들어줄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돌이켜보면, Comfot Zone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스텝이었다.)
내 간절함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은 세상 어딘가에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내가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행했다.
1. 가장 먼저 링크드인에 가입했다.
2. 나와 비슷한 고민과 경력을 가진 모임에 참여했다. (사업 개발 & 영업 주니어 모임)
신세계 I&C, NHN커머스, SAP코리아, Need, 한국딥러닝, 나이스페이먼츠, 뤼튼, 패스트파이브에서 사업 개발과 영업을 담당하는 영&프로페셔널한 친구들을 찾아 연결했다.
도메인은 각기 다르지만 직무와 건강한 성장 고민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본질은 같았고, 타협하지 않고 발전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1년 전 만난 이 친구들은 이제는 꽤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이직/사업 발굴 등 개인 대 개인으로 회사 대 회사로 서로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3. 고민을 지나온 시니어분을 찾았다.
비슷한 고민을 지나온 분들의 방식을 알고 싶었다. 암묵지 속에 숨어 있는 힌트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가리지 않았다. 강의를 수강하고, 세션에 참여하고, 박람회가 열리면 직접 찾아갔다.
용기를 내어 만나 뵙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당시에 나에게 체면 치례는 없었다. 간절하되 친절하게 두드린다면 문은 열릴 거라고 믿었다.
일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인지를 만들어가는 자아실현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 주어진 역할만 잘 수행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이 나의 기준과도 맞닿아 있어야 했다.
동료 역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자극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환경을 바라보는 기준도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네임밸류와 연봉을 중요하게 봤다면,
이제는 회사의 비전과 풀고자 하는 문제, 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커리어는 불안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함은 당연하다. 연 거래액 6조를 내던 회사가 한순간에 판매 대금 미정산 이슈로 신문 1면에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안을 기회로 만드는 건 "간절함을 기반한 실행"이다.
나에게도 그 간절함은 실행주의라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그 덕분에 익숙했던 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불안하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간절함을 행동으로 옮겨보자. 생각보다 세상에는 내 고민을 함께 고민해 줄 좋은 사람들이 많다.
3. 선한 영향력(Pay it Forward)에서 자세히 풀어보겠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받았던 감사한 기회와 도움을, 나 역시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 언제든 커리어에 고민이 있는 분이라면 함께 고민을 나눠요! (주인장 링크드인)
명확한 해답을 바로 내리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말로 형언하는 순간, 고민은 정의되고 문제는 해결 가능한 형태가 됩니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Writing Is Surv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