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랑하는 아가의 진료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준 것에 대한 회한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아울러, 반려동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애 쓰시는 수많은 수의사님들께도 존경을 표합니다.(꾸벅)
1년 전부터 뿌의 눈동자에 희끄무레한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형광등 불빛이 눈에 비치는 걸까? 말로만 듣던 백내장인가?'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남편이 안과 동물병원에 뿌를 데리고 갔다.
초기 백내장이며 아직 수술할 단계는 아니라고 한다.
아침, 저녁으로 2개의 안약을 10분 간격으로 넣으면 백내장 진행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단다.
우리는 이 한마디에 '잘하면 수술을 안 해도 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1년간 목디스크 있는 뿌의 목을 들어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안약 넣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뿌는 심장약을 먹고 있으므로 전신마취를 하고 백내장 수술하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최근 2~3주 전부터 뿌 눈이 갑자기 하얀 렌즈를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단 생각에 '강아지 백내장 수술'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그 어느 글에서도 뿌가 다니는 안과 동물병원에서 수술했다는 후기가 안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일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뽀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도 병원마다 수술 성공확률이 달랐다.
간단한 백내장 수술이라도 심장병이 있는 아이를 아무 병원에서나 수술할 수는 없으므로 인터넷에서 강아지 백내장 후기를 보고 다른 안과전문 동물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2차 동물병원의 뿌 심장병 진료기록과 기존 안과 동물병원의 백내장 진료기록을 모두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뽀는 아침부터 엄마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리광을 부린다.
나도 한순간이라도 더 뽀와 함께 있고 싶은 생각에 차멀미를 감수하고 뽀를 함께 데리고 갔다.
이미 인터넷 후기를 통하여 대기시간이 상당할 것이란 것을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대기 인원은 엄청났다.
뿌의 기본검사를 마치고 원장님과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오른쪽 눈은 시력이 안 나오고 현재는 왼쪽만 시력이 있는 상태입니다. 백내장 수술이 가능한지는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아~ 뿌는 그동안 한쪽 시력만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도 몰랐구나.
평소에도 뽀만 일방적으로 이쁨을 받아, 의기소침하던 뿌가 더욱 안쓰러워졌다. 이제 뿌도 많이 안아줘야겠다.
잠시 후 뿌는 벌거벗은 몸으로 검은색 안경을 끼고 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안경을 벗으려고 떼를 쓰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는 달리 뿌는 내 무릎 위에 엎드려서 얌전히 20여분을 보낸 후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뿌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뽀는 엄마와의 사이에 진료실 유리벽 하나를 두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기 위해 1년을 애 태우듯 애가 타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다시 원장님과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정밀검사 결과 수술은 가능합니다. 왼쪽은 수술할 단계는 아니므로 이번 수술은 오른쪽만 진행합니다."
"뿌가 심장병이 있어서 심장약을 먹고, 기관지염과 목디스크도 있는데 수술에는 지장이 없겠습니까?"
원장님은 청진기를 뿌의 가슴에 대더니,
"심장병이 있다고 수술을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 전에 스테로이드 약은 당분간 끊어야 합니다."
"앞전에 다니던 안과 동물병원에서 하루에 2회 안약을 넣으라고 했는데 그것도 끊어야 할까요?"
"그건 넣어도 소용없습니다. 1%의 가능성 밖에 없는 약이라 효과 없습니다. 백내장은 일단 진행되고 나면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헉~ 말문이 막혔다.
"후~ 후~" 이내 나는 거친 숨소리를 몰아 쉬었다.
1%의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뿌와 싸우고 유혈사태를 겪으면서 목디스크가 있는 아이 목을 들어 1년간 안약을 넣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 신경질 나."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와 버렸다.
간호사도 원장님도 놀라는 눈치였다.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떡실신이 되어 곯아떨어졌다.
뿌(11살)와 뽀(10살)
"그 약 넣을 필요 없대요~ 가능성 1% 래요~
그런 약을 목디스크 있는 애 목을 뒤로 젖히고 1년간 약을 넣은 거래요~"
그동안 안과 진료를 도맡아 해오던 남편의 전화에 분를 삭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난들 그런 줄 알았나?"
남편의 성격상 깊이 따지고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수의사가 '하자고 하면 해야 하는가 보다.' 하면서 약을 받아 왔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뿌가 목을 못 가눠 목디스크 약을 먹이면서도 백내장 진행을 늦춰볼 요량으로 안약 넣은 것을 멈추지 않았던 기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 진료 갔을 때 물어봤었어야죠~"
우리는 이렇게 부부싸움을 하고 말았다.
'백내장 진행을 늦출 수도 있다.(물론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었으므로 병원에서 빠져나갈 여지도 두었으리라)'라는 병원 말에 그것이 1%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약을 받아오는 보호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대개의 경우 '늦출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고 병원에서 설명한다면 보호자는 적어도 50%의 확률은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권하는 약을 일일이 몇 %의 가능성이 있는지 묻지 않는 이유는 이미 병원에서 검증된 약효를 기반으로 권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병원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1%의 가능성이라고는 누가 감히 생각하겠는가?
나빴다. 병원이 정말 나빴다.
제발 사람병원이든 동물병원이든 짧은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돈벌이의 수단으로 병원을 개원하여 사람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눈앞의 이득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이용 당하는 사람과 동물은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며, 언젠가는 나보다 더 독한 사람을 만나면 대단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또한, 소수 몇몇의 악행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훌륭하신 의사, 수의사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 또한 크나큰 사회적 손실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병원이란, 생명을 구하는 굳이 생명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장애를 막을 수 있는 존엄한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