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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콕 Oct 26. 2024

병원 가는 길

거리를 좁혀오는 숨 막히는 미래

차갑고 건조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물속을 걸어 다니는 것 마냥 숨을 쉴 수 없단 말인가. 물풍선에 가느다란 바늘구멍을 낸 것처럼 콧물이 졸졸 새어 나왔다. 코가 헐 때까지 코를 풀어도 휴지에 나온 콧물양은 영 만족스럽지 않다. 이대로 일하다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면 싸장님이 곤란하지 않으시겠어요? 그런 논리로 다가 일하다가 회사 밖으로 나왔다.


 회사가 있는 곳은 지자체의 행정력이 닿기는 하는지 알쏭달쏭한 시골 산업단지. 갓 길엔 승용차 몇대가 당당히 서 있다. TV에선 연말만 되면 지자체들이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친다고 방만한 예산 사용을 성토한다. 그런 뉴스도 이 동네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평지를 걷고 있는지 하이킹을 하고 있는지 발로 디딘 모든 곳이 울퉁불퉁하다. 병원 가는 길은 구리지만, 회사를 벗어났다는 사실에 은근히 신났다. 병원에 도착도 하지 않았지만 코가 뻥 뚫린 것 같기도 하고.


 산단을 빠져나와서 읍내로 나왔다. 병원을 한 블록 앞두고,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못 들은 척하려고 했지만, 정확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할머니였다. 노약자의 곤경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불러 세웠느냐 여쭈었더니 일단 '저쪽'으로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했다. 보호자가 어디 있는지를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휠체어를 밀어본 건 인생에 처음이었다. 바퀴 달린 사무용 의자를 굴리거나 쇼핑 카트를 미는 것 어느 것과도 같지 않았다. 울퉁불퉁 솟은 보도블록 사이에 바퀴가 껴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힘을 줘서 휠체어를 확 밀어버리면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수야 있겠지만, 앉아 있는 사람이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그럴 땐 이렇게 후진을 했다가 밀어야지."

 거들어 줘서 보도블록 사이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바퀴가 두세 번 돌기도 전에 맨홀이 있는 오목하게 들어간 구간에 갇혀 버렸다. 아무리 밀어도 휠체어는 올라갈 생각을 안 했다. 이래서야 언제 '저쪽'까지 갈 수 있을까. 힘이 쭉 빠졌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밀게요!"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안도했다. 할머니의 딸이나 며느리 나이대로 보이는 분이었다.

"혹시 할머니 보호자 분이신가요?"

할머니의 보호자라는 걸 확인하고 휠체어 손잡이를 놓았다.

 “래서 내가 나오지 말자고 했잖아!”

 보호자가 할머니를 타박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옆 건물 이비인후과로 갔다.


 의사는 콧구멍을 비경으로 보더니 요즘 미세 먼지 때문에 비염 환자가 많다고 했다. 시간 맞춰 알레르기 약을 먹고 나잘 스프레이를 코에 뿌렸더니 콧물이 멈췄다. 현대 의약품은 마법이다. 자다가 숨이 막혀서 깨는 일을 없겠지.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공기를 일분일초 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알레르기약을 먹었으면 기절하듯 자는 게 보통 아닌가? 병원 가는 길 생각이 나서 잠들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떻게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지 조차 막막했다. 바퀴가 굴러갈 수 없는 정비가 엉망인 보도. 보호자가 휠체어 탄 할머니를 길가에 남겨둔 이유는 뻔하다. 건물 입구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온갖 매체에서 고령화 추세가 국가 성장동력을 죽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생산력 없는 인구는 외출 조차 할 수 없도록 집 안에 가둬두면 그만인가 싶다.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앞에 누구나 보호자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으로의 역할 이행을 피할 수 없다. 병원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미래를 엿 본 셈인데, 세상은 보호자에게도 노약자에게도 가혹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저 멀리에서부터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오는 미래에 숨통이 막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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