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주는 사람들
선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답니까
사랑은 로맨틱한 행동을 통해 실현된다. 낭만적인 행위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물하기다. 많고 많은 행동 중에서 선물이라니, 너무 속물적이고 물질적이지 않냐고? '단지 사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십시오.'는 아동 교육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사랑이 필요하다.
외동은 지 밖에 모른다, 남 챙길 줄 모른다는 편견에 일조하고 싶지 않지만 행동거지를 돌아보면 나는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했다. 선물 받기는 좋아하면서도 돌려주기는 박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고 나서 내가 줄 타이밍이 되면 내심 '누가 선물 달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라고도 생각했다. 이걸 글로 쓰면서도 내가 이런 인간이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갑이 얇아서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을 하기엔, 없는 형편에도 선물을 마련한 감동 사연들이 세상에 널렸다.
도둑놈, 양아치, 쓰레기 심성 탓에 어느 순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갖은 이유로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내가 먼저 선물을 내미는 건 '가오 상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며 뻐댔다. 내 것을 조금도 내어주지 않았다.
한편 내가 받은 대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도 내게 선물 주기를 중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처음 그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때는 ‘나한테서 얻어 갈 것이 없다는 걸 알면 떨어져 나가겠지.’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선물을 주는 건 그저 한 순간의 변덕이겠거니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보답하지 않았어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목이 긴 양말, 물망초 향이 나는 로션, 내 발에 딱 맞는 장화와 말린 라벤더 꽃이 흩뿌려진 케이크 같은 것들.
그들이 내게 선물을 줄 이유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나한테 잘 보여봐야 뭐가 떨어진다고. 여러 번 선물을 받고 서야 겨우 깨달았다. 나한테 뭘 바라고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대로 나와 주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라는 것을.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선물을 한 것이다.
선물을 줄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갑작스러운 자각에 덜컥, 감동을 먹었다.
내 존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깨달음이 저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 전 이제 새 사람으로 거듭났어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전히 주변 사람에게 내 것 하나 내어주는 일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때는 선물공세로 내 미련한 정수리를 깨뜨린 사람들을 떠올린다. 선물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는 것, 등가 교환이나 거래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애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