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주 일요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교회에 간다. 이 교회에 출석한 지도 벌써 삼십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에 교회는 남유다 북이스라엘 처럼 쪼개졌다가 합쳐졌다가 담임 목사가 몇 번인가 바뀌고 오래된 예배당을 안전진단 해 봤더니 여리고성 처럼 무너지기 직전이라 리모델링을 싸악 했는데 교회 일대가 고만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성전 이전을 하니 마니 하다가 제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글 몇 줄로 요약하기 버거운 풍파를 겪는 동안, 교인들은 노쇠했다. 예배당 꼭대기에서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머리를 보면 희거나 횅 비어 있다. 요즘 부쩍 주보에 교인 아무개가 소천했다는 소식이 늘었다. 그런 일이 있는 주에는 유족들이 교인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거나 떡을 돌린다.
이 주 연속으로 콩백설기를 챙기다가 떡, 질린다. 라고 생각했다. 유족들이 조문객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주는 선물인데 곱게 받아야지 뭘 따지고 자빠졌느냐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미리 자아비판을 해본다. 그런데 떡이 싫은 걸 어떡하나. 금주, 지난 주에 받은 떡 말고도 냉동실이 답례품으로 받은 시루떡으로 터질 지경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는 동네 마트에서 장 보는 김에 교회에서 받은 떡을 캐셔에게 넘겼다.
“매번 고마워요!”
계산원이 싱글벙글 미지근한 떡을 건네받았다. 못 먹을 걸 주는 것도 아니고, 캐셔도 떡을 좋아한다고 말 한 적이 있지만, 내가 싫어 하는 걸 남한테 떠넘기는 듯한 찜찜함이 있다.
“문상객 답례품은 꼭 떡이어야 하나? 그런 법도가 있나?”
그런 법은 없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난 경조사 생기면 절대 떡은 안 돌리려고. 수건 돌릴거야.”
엄마는 수건에 뭔가 문구를 박아서 돌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개업 기념 졸업 기념 환갑 돌잔치 운동회 준공 기념 수건은 봤어도 장례 기념 수건은 지금껏 받아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문구를 써서 돌려야 하나. 엄마와 나는 한 두마디씩 마구잡이로 던졌다.
아무개 장례식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 축 사망
아무개 소천 기념
저런 글귀가 적힌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 기분이 뒤숭숭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적힌 수건을 선물하는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에
“아무개 가족 일동 드림이라고 하면 되겠다.” 하고 엄마가 말했다. 이름이 적혀 있으니 고인을 기념할 수 있고, 죽음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 없어서 거부감이 없는 문구였다.
“오.”
장례와 죽음에 대한 보편정서를 해치지 않는 표현을 찾아낸 기쁨은 또 잠시. 죽은 아무개가 직접 조문객에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통해서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유언장에 답례 수건에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먼저 갑니다’ 라고 쓰라고 할거야.”
“나는 그럼 내가 쓴 작품을 전시해야겠다.”
엄마 친필 서예작품을 수건에 수 놓으려면 돈이 꽤 들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냥 장례식 답례 떡이 싫었을 뿐인데 이만치 와버렸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을 보니 이별이 늘어나는 인생의 한 점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