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한_502년_순장제 폐지

실직주 방어전_(5) 군장 우도(于道)

by 박달


정찰 교란 작전 전날, 이사부는 나마 아간과 함께 실직 외곽 회합소에서 지역 지도자 우도(于道)를 만났다. 그는 실직 십여 개 촌락을 관할하는 임명직 군장으로, 본래 서라벌 출신 문사였으나, 이 땅의 백성들을 직접 지키겠다는 뜻으로 중앙 벼슬을 내려놓고 실직으로 내려온 인물이었다. 넓은 이마, 말간 수염, 진득한 말투. 실직 지역에서는 늘 백성의 곤궁을 도우려 애써온 탓에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이사부는 그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작전 지시서를 내밀었다.


“군장님, 정찰대가 북동 능선에 접근 했습니다. 민가 대피와 병력 전진을 병행하고자 하오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우도는 죽간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백성들은 어느 길로 대피하느냐.”

“가장 빠른 길은 남쪽 물길을 따라 내성으로 가는 것이오나, 비탈이 험하여 노약자는 위험할 수 있어서 늦어지는 자는 토굴을 의지하여 몸을 숨기도록 할 것입니다. ”

아간이 답하자, 그 말에 우도는 주변 수행에게 손짓했다.

“당장 비축해 둔 소달구지를 풀어라. 달구지마다 지게 두 개씩 걸고, 나이 많은 자는 태우고, 아이는 업게 하라.”

이사부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런 지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까?”

우도는 이사부와 아간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군은 군을 다루고, 나는 백성을 다루지. 내게는 지휘권은 없지만, 이 땅의 발자국 수만큼은, 내가 더 오래 지켜보았네.”


그 순간 병사 하나가 회합소로 들어섰다. 병사는 아간을 보고 허리를 숙이곤 보고했다.


“보고드립니다. 목초지에 백성 열다섯이 아직 못 빠져나갔다 합니다.”

아간이 급히 명령을 내리니, 우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아간과 이사부에게 말했다.


“장군, 내겐 검도 없고 갑옷도 없네. 그러니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면, 누가 명령자고 누가 백성이냐를 따지지 말게나. 그들 모두를 지켜주게.”


그리고 그는 허리를 펴고 회합소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나는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살리고자 하는 자들에게 나라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네.”


그 말에 이사부는 처음으로, 검을 가진 자신이 오히려 작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언덕 위, 아간은 능선을 따라 움직이는 병사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서쪽 울타리는 무너뜨려라! 마을 뒤쪽 숲길로 사람들을 몰아라! 바람이 북쪽으로 불면, 그들은 남쪽으로 빠지려 들 것이다. 놈들이 볼 땐 이쪽이 헛길이다.”


“마을 집 몇몇을 골라, 밥 짓는 연기를 끼니마다 피워라. 적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


그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했다. 말갈과 싸운 경험이 많은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생명을 다 지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따로 움직였지만, 이상할 만큼 조화로웠다. 아라는 마을 외곽의 동물 울음소리로 말갈의 접근 방향을 파악해 아간에게 신호를 보냈고, 아간은 곧바로 병력을 분산시켜 가장 취약한 숲길 쪽을 봉쇄했다. 이사부는 고을 사람들을 이동시키며 주민들의 심리를 다독이고 질서를 지키게 했다. 누구 하나, ‘누가 명령권자인가’를 따지지 않았다. 전쟁이란 두려움을 대신 짊어져야 하는 자리임을, 그들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사부는 짐을 나르던 소년의 손을 붙잡았고, 할머니의 들것을 직접 들었다.


아라는 숲을 돌아다니다가도 틈틈이 피난가는 행렬에 따라붙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어느 아이에게 물을 먹이려는데, 아이가 물었다.


“아라 누이… 나, 무서워요. 엄마는?”

아라는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무서워도 괜찮아. 지금 너를 데리고 있는 내가 엄마 대신일 거야.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진짜 엄마가 널 안아줄 수 있을 거야.”


그 말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고,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멀리서 이사부가 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스쳤다. 짧은 찰나였으나, 그것은 단순한 인사도, 작전상의 확인도 아닌 함께 지킨다는 감정의 확인이었다.


마을은 결국 피해 없이 대부분 대피를 마쳤다. 태양이 능선 위로 붉게 떠오르며 안개를 밀어냈을 때, 그 마을의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오직 젖은 나뭇잎 냄새만이 남아, 침입자에게 잘못된 평온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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