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할 수 있다는 것

성동구장애인복지관 그리고 장애인 이동권

by 장성수

20년 전 일이다.

당시 서울 소재 한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무료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 당시 한창 유행 중인 싸이월드에서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게시글을 확인했다.

성동구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아동의 주말 야외활동을 돕는 봉사자를 찾고 있었다.

어차피 주말에 할 일도 없고 해서 별생각 없이 지원하고 정해진 날에 성동구복지관을 찾았다.


사전에 OT 겸 장애아동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장애아동을 마주하고 보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어색한 미소를 건네며 우물쭈물거리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넨 건 아이들이었다.

환한 미소를 재잘거리며 서스름 없이 다가왔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스스로 해내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봉사활동이라는 게 사실 별게 없었다.

야외활동을 하면서 휠체어를 탄 아동들은 휠체어를 밀어주고,

활동보조기구를 착용한 아동들은 옆에서 부축해 주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봉사활동 덕분에 평소를 가보지 못했던 어린이대공원, 근교 공원을 가볼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의 유난히 밝은 미소를 보며 뿌듯함을 느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이 외출이 장애아동들에게는 한 달에 한두 번 있는 야외활동이라는 것을.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힘겹지만 힘든 내색을 하지 못한다.

특히 엄마들은 아동의 장애가 모두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하루하루 죄인으로 산다.

사회는 장애인을 위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세상에 나오면 낯설어하고 불편하게 생각하곤 한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또는 교통시설은 여전히 소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장애인 그리고 장애아동의 바깥 나들이는 그 수고로움이 더할 수밖에 없다.


10여 년이 지나, 집회시위 현장에서 장애인단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도로를 점거하고 오체투지 등을 하며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성동구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들이 지금쯤이면 대학생이 되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지원체계의 부족으로 대학생이 되지 못하거나 여전히 야외활동이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도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뉴스에서 보도되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탑승 시위'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비장애인인 소시민의 이동권을 볼모로 잡아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바라본다.

과연 이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의 이동권에 준하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는가.

여전히 세상의 문이 멀게만 느껴지는 장애인들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만, 불편함이 없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동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동할 수 없다는 것 또는 많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동할 수 없다면, 교육·의료·사회복지·사회활동·직장생활 등이 상당히 제약된다.

금전적 자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원을 축적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렇게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2026년에도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또는 주창하에) 다양한 시위를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직업적 특성상 이들에 대응해야 할 때도 올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2026년에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조금 더 보장되었으면 한다.

2026년에는 내가 평소 지나는 길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보았으면 한다.

20년 전 성동구복지관에서 만난 장애아동들이 2026년에는 좀 더 자유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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