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밖 청소년 그리고 가정밖 청소년
매년 연말 그리고 신년이 되면 느끼는 게 '시간 참 빠르다'는 것이다.
'2025년은 왜 그렇게 또 쏜살 같이 지나갔나', '뭘 그렇게 허겁지겁 살았나' 하면서도
한 해 잘 버텨준 자신이 기특하고 우리 가족이 별탈 없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이제 4살이 되는 우리 아들이 별사고 없고 나름 웃으며 지내는 모습에 특히 감사함을 느낀다.
새해에도 우리 가족이 별탈 없길 바라다가, 문득 이따금씩 마주하는 '학교밖 청소년'들이 떠올랐다.
관할 구역에 몇 개의 초중고등학교가 있지만, 유독 학교폭력 신고가 많은 학교가 있다.
우선 학교폭력으로 남모르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학교폭력 및 괴롭힘의 피해 학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학교폭력은 폭력을 넘어 평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나도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협소하나마 내 경험을 비춰 봤을 때, 언론 매체나 드라마 소재에 노출되는 것처럼 촉범소년 강력범죄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친구에 대한 괴롭힘 또는 셔틀 놀이, 삥 뜯기(?), 흡연, 음주 등이다. 어찌 보면 내 학창 시절에도 존재했던 일탈 유형의 확장판 내지 범죄화이다. 하지만 최근 SNS를 통한 따돌림, 피해학생 능욕, SNS 강제 초대를 통한 괴롭힘 등은 일반 성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집요하고 잔인하며 피해 학생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은 관련 법령 및 예산 미비, 학교와 사회의 관심 부족, 가정 해체 등으로 소원하기만 하다.
'학교밖 청소년'으로 돌아가면, 신고현장에서 마주한 '학교밖 청소년'들을 마주하면 다소 놀라는 게 있다.
우선 많이 '앳되다'는 점이다. 물론 내 나이가 40대 초반에 해당하고 노안(?)이라 그러기도 하겠지만, '정말 얘기(?)들이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청소년들이 '저항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거나 '나름 대드는 모습'을 연출하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거칠게 선을 넘는 청소년들도 있다. 그때는 심호흡하며 분노(?)를 삭힌다.
촉범소년 또는 학교밖 청소년을 마주하게 되면, 건네는 말이 있다. "밥은 먹었냐", "밥은 먹고 다니냐". 이 아이들의 경우, 술은 어디서 얻어 먹을 지언정(?) 밥을 챙겨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편의점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일단 먹인다. 혹자는 '걔네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데, 먹을 것을 사서 먹이냐. 그러다가 걔들 버릇된다'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 가능하면 뭐라도 먹인다. 일단 뭐라도 '얻어 먹은(?)' 아이들은 다소 경계를 푼다.
그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있노라면, 여전히 '얘는 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외로움이 엿보인다. 가정 돌봄의 부재가 느껴진다. 어차피 가정이든 학교든 문제 아이 또는 학생으로 낙인찍혀, 유사한 또래와 팸을 만들고 방종과 일탈로 자신을 던져놓음이 보인다. 촉범소년은 가해자의 모습으로만 보이지만, 그들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거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유일하게 소속감을 느끼는 팸에서 외면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촉범소년의 경우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에 속한 경우가 많다.(물론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 다문화가정에 속한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촉범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어찌보면, 내가 유년시절 그리고 청소년시절에 누렸던 가족의 따스함 그리고 부모의 애정, 친인척의 지지, 건강한 또래 집단 등의 자원이 이들에게는 많지 않다. 애정의 결핍, 사회의 무관심, 도움의 손길 부재가 우리 아이들을 범죄로 내모는 것은 아닐까.
촉범소년에 공감할 여유는 아직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놓인 현실과 배경에는 연민을 느낀다. 만약 가정과 주변에서 온전한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해 어른에 대한 신뢰를 키울 기회가 없었다면 이 사회가 다소 열린 마음으로 이 아이들을 품어 줄 수 없을까. 긴 호흡을 갖고 사회에 대한 신뢰란 '마음의 근육'을 키워갈 기회를 주면 어떨까.
2026년은 학교밖 청소년, 가정밖 청소년 그리고 촉범소년이 자신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부정하지 않고 손가락질만 하지 않고 따뜻한 손길을 건넬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