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하는 분은

두렵더라도 올바른 길이라면 목소리를 내는

by 장성수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게 있다.

생각보다 존경할 만한 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보다 어른다운 어른이 얼마 없다는 것을

누구나 어느 순간이 오면 비겁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위기나 이익의 순간이 오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나를 스쳐간 이들의 삶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이들도 있지만, 그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누구나 주어진 삶을 꾸역꾸역 이어 나가고 자기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때로는 자존심도 버릴 수밖에 없는 게 소시민의 삶 아닌가.

비겁해지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순간도 분명 존재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난 누군가를 정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때때로 비겁해지고 불의에 외면하는 걸 잘 알기에.

아니 누군가의 삶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에, 존경할만할 누군가를 찾으려 한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엔가 존재할 그들이기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승진과 자리에 목매곤 한다.

계급이나 보직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권한을 나타내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회에서는 계급과 자리가 그 사람의 능력과 인격, 사람됨됨이 등을 나타낸다고 보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대개 그 계급과 자리의 권위에 쉽게 순응하곤 한다.

하지만 사회 생활해 보면 안다.

계급의 높음이 그 사람의 능력, 인격, 인간성과는 크게 관계치 않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점점 계급이나 자리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람과 생활해 보면서, 경험하거나 알게 된 그 사람의 능력과 인간 됨됨이 등으로 판단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나는 여전히 높은 계급을 탐하곤 한다.


어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공무 중 베트남에서 별세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순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분의 삶을 잘 알진 못한다.

다만 과거 살벌한 군사독재 치하에서 기세등등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많은 노력 하셨다는 것으로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그 분을 존경했다.

시민의 기본권을 침탈하는 국가권력에 저항하며

시민과 함께 하시던 그 분을.


생각해 보면 소위 사회에서 주요 자리를 점하는 이들만 존경의 대상이 될 순 없다.

12.3 비상계엄 당시,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꿔온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 너 그리고 우리가 가꿔온 소중한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국회로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리고 그 아스팔트의 추운 겨울을 동료 시민들의 온기로 함께 버틴

우리 시민들이 존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유로 두려운 상황에서도, 특히 강한 대상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존경한다.

여기에 이웃 그중에서도 자신보다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돌보는 이들을 존경한다.

비겁한 삶을 이어가는 나 자신이지만, 가끔씩일지언정 올바른 길을 위해 목소리 내 보겠다.


이해찬 전 총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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