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잊어가는 선배시민에 대해
업무를 하다 보면 이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선배시민'('치매노인'이라는 단어 대신 이 표현을 쓴다)을 만나게 된다. '기억을 잃어가는 선배시민'을 만나면 안전한 귀가를 위해 성함과 주소지를 여쭤본다. 성함을 아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주소지를 아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럼 2단계로 넘어간다.
동거 가족 혹은 분가 자녀의 성함이나 연락처를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이신 듯 뜨문뜨문 실마리 같은 단서만 제공할 뿐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십여 분간 이런저런 질문을 시도하다 보면 어느덧 체념하고 3단계로 넘어간다.
사실 3단계라는 게 별것이 아니다. 그냥 안부를 여쭈고 근황 토크(?)를 한다. 그러면 많은 경우 당신의 자식 얘기, 남편이 속 썩인 얘기(?), 사기당한 얘기, 힘들었던 얘기 등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신다. 난 그저 맞장구치며 듣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지 모르게 만담을 나누다, 불쑥 여쭤본다. '어르신, 근데 사시는 곳 어디예요?, 아드님 전화번호 아세요?' 등등. 물론 많은 경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가끔씩 기억해 내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업무라는 게 '기억을 잃어가는 선배시민'의 안전귀가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때때로는 중언부언하는 것처럼 느끼지기도 해서, '왜 이런 것도 기억을 못 하시나, 집은 왜 나오신 건가'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불쑥불쑥 샘솟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 한 구절을 되새긴다. '치매노인은 기억이 지워질지언정 감정은 남는다'.
업무를 하다 보면, '기억을 잃어가는 선배시민'을 함부로 대하는 동료를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 이해가 가는 측면도 일부 있다. 도움을 드리려고 해도, 딴소리(?)만 하시는 모습에 오죽 답답했으면 저럴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선배시민'께서 일부로 딴소리를 하시는 게 아닐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답답할 이는 본인일 것이다. '어차피 치매노인이니 오늘 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폭력적이다.
추태를 부리는 선배시민이 있다. 나잇값을 못하는 선배시민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다. 누구나 늙는다. 누구나 보살핌이 필요하다. 선배시민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우릴 보살핀 그들에게, 이제 우리가, 이 공동체가, 이 사회가 따뜻한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송상은 배우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들으며 이 글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