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머문 자리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by 장성수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신고와 현장이 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기 보단 피하고 싶다는 게 적절할 듯하다.

망자가 마지막으로 머문 현장이다.


변사 현장은 많은 경우 고령의 선배시민들이 주거지에서 돌아가시고

돌봄 가족이 이를 신고한 경우이다.

때때로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 뒤 발견되기도 한다.


산자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일까.

현장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겹친다.

주거지 현관문에 들어서기 전 잠시 고인의 명복을 위한 목례를 한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문 자리를 보면 고인의 지난 시간들이 보이는 듯하다.

넓은 집에 자식들의 돌봄을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자리,

두 칸짜리 2층집에서 배우자의 돌봄을 받다 돌아가신 자리,

뒤늦게 발견된 반지하 단칸방에서 돌아가신 자리 등.


죽음에 무게가 다르지 않겠지만

망자의 나이대가 비교적 젊거나 마지막으로 거한 자리가 다소 좁고 누추할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망자의 지난 삶이 결코 평탄치 않았을 것 같아.


올해도 자살은 진행 중이다.

죽고 싶어 죽는 사람은 없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 상태에 내몰려 자살하는 것이다.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 '사회적 타살'이다.


다행히(?) 아직 자살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다.

아직 자살 현장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

'사회적 타살'의 대상자는 비교적 나이가 젊다.

그래서 다른 동료의 자살 현장 대응과 관련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매우.

올해 접한 자살의 방식은 대부분 투신이었다. 그 망자의 마지막 머문 자리는 그렇게 차가운 바닥이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 운과 상속받은 자산, 기회의 포착 유무 등에 따라 다양한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노오오력을 한다 해도, 주어진 기회와 운이 적을 수도 있다. 불행이 겹쳐오기도 한다.


타인에게 상당한 해를 가하지 않은 이라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비루한 삶을 살았더라도

마지막 머문 자리는 조금 따뜻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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