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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솔 Bin Sole Sep 23. 2024

옛적 부평 한 구석

아무래도 70년대의 끝자락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지는 않은 듯했다. 나는 가끔 부평역을 지나서 길게 뻗은 아스팔트 길을 혼자서 왔다 갔다 했다. 말이 아스팔트이지 길은 여기저기 파이고 파인 곳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 있고 냄새가 진동하고 차량이 지나가면서 튕기는 퇴폐 방울이 내 심장에 까지 스며들곤 했다. 부근에 연탄공장이 있어 도로는 새카만 석탄 가루로부터 점령을 당하면서 내뿜는 먼지는 지나 다니는 사람들의 목덜미에 얼룩으로 그림을 그려 주었다. 이 얼룩은 주체가 시니피앙의 연쇄를 지나면서 만드는 존재의 결여가 드리우는 구멍에 나타나는 딸국질이리라. 하늘 마저 회색빛으로 당장 비나 눈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나는 이 곳을 지나 거의 도로가 산 자락과 마주하는 곳까지 걸어 다녔다. 거기 단칸방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 미군 부대가 있었다. 그들을 노리고 유흥가가 한 줄로 늘어서 있고 여인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은폐를 돈과 맞바꾸고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면 미군은 거의 보이지 않고 뜨네기 루저들로 우울한 게으름을 뿜어 낼 뿐이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한 낮에 그 길을 따라서 역에 들리곤 했다. 용무가 있었냐고요? 일은 무슨 개뿔,  대합실 나무로 만든 긴 의자에 앉아서 바쁜 모습으로 자신을 감추는 일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있었으나 직장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이삿짐 센터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이사를 할 뿐, 이삿짐 센터에 일을 맡기지 않았다. 노는 노동력이 넘쳐 났던 것이다. 거리에는 아이들로 바글거려서 학교에 가면 한 반에 보통 60명이 넘었고 심지어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해야 할 판이었다. 잉여의 세상이었다. 잉여 노동력, 잉여 학생들, 잉여 시간들 ... 그야말로 잉여가치로 세상은 어렵게 굴러가고 있었다. 

오늘은 '손 없는 날'이다. 우리 이삿짐하는 사람들에게는 '손 없는 날'이 장날이다.

손이란 귀신의 손을 말하는데, 이 손은 동서남북 네 곳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람들의 일을 방해한다. 손 없는 날은 음력으로 9와 10이 들어가는 날을 말한다. 이 날에는 손이 하늘로 올라감으로 '손이 지상에 없는 날인 것이다.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손이 있고, 3이나 4가 들어가는 날은 남쪽에, 5나 6이 들어가는 날은 서쪽에 있고, 7이나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있다. 

오늘은 음력 9월 9일이다. 중구절이기도 하다. 어떤 때, 추석이 농사 추수할 때 보다 이르면 중구절에 추석을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추수가 시작되고 추석을 맞게 되어서 중구절은 추석이 아닌,그냥 보내는 날일 듯하다. 대신 이사는 많이 할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전화를 기다렸다. 

이틀 전에 전화가 한 통 드디어 왔다. 

"언제 이사가세요?"

"모래요"

"이삿짐은 얼마나 되세요?"

"2톤 트럭 한 대면 될 거예요"

"아침 몇 시에 갈까요?"

"아홉시에 오세요"

 오늘 9시에 집으로 갔다. 부부가 계셨다. 40대 부부.

부부 둘 사이에 말이 별로 없다. 냉냉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그런데 나 말고 이삿짐 센터 사람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이상하다. 

"이사 갈 집이 두 군데라서요"

아내의 말이다.

짐이 별로 없는데 다가 둘이서 짐을 싸다보니 금방 일이 끝났다.

남편 쪽 짐은 훨씬 더 적었다. '아무래도 남자라서 살림살이 짐이 많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짐을 싣고는 각자 두 집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나는 남편 집으로 갔다. 30분 정도 걸렸다.

남편하고 둘이서 나르다 보니 금새 일이 끝났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아내가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냄비, 냄비" 하면서  달려 와서는 냄비를 찾는다.

"이 냄비는 내 거야" 아내가 말했다.

"아니야, 이 냄비는 내가 상여금 받아서 산 거야, 내 거야" 

"뭐?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둘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밖에서 전혀 알 수가 없다.

한 시간이 지났다.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다.

두 시간이 지났다. 

"경찰을 부를까요?" 이삿짐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이삿집 비용을 신용으로 받았어요" 하면서 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파출소를 찾았다. 

순경 한 분을 데리고 그 집을 다시 찾았다.

순경이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다. 인기척 조차 없다. 

순경이 말했다. 

"안에 사람이 없어요"

"아니 사람이 없다니, 분명 둘이 방으로 들어갔어요"

"화장실 쪽으로 쪽문이 하나 있어요" 경철이 말했다.

그럼 나는? 내 이삿짐 비용은? 얼마만에 일을 한 건데? 나는 어째?

그리고 그 부부는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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