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는 두 번의 구석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던 때,
두 번째는 암 진단을 받은 지금이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강조하셨다.
"약자를 지키는 사람, 애국심 강한 사람이 되어라."
특히 어머니의 교육 신념이 그랬다. 아무래도 군인으로 살다 지금은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신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군 복학을 준비하던 시절, 전공이 잘 맞지 않아 진로 고민이 많았다. 그 무렵 소방관이던 아버지가 부상으로 허리 수술을 받으셨고, 곁에서 간호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진로 이야기가 오갔다.
아버지는 내게 소방관을 권하셨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부모님의 가르침, 현충원에 계신 외할아버지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에 홀리듯 소방관의 길을 선택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이 직업은 내가 품어온 가치관에 너무나 잘 맞았다.
목표가 뚜렷해지자 의욕이 샘솟았고, 신념도 더 굳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네 번의 도전에도 번번이 낙방했고, 친구들의 취업 소식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잃어가며 술과 자기 연민에 쉽게 빠져 가치관과 신념의 빛은 바래져만 갔다.
그렇게 첫 번째 구석에 갇혔다.
그런 현실에 내 몸이 버티질 못했는지 설상가상으로 암까지 진단받게 됐다. 의사에게 '암'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세상이 무너졌다. 소방관의 꿈도, 가치관도, 신념도 모두 의미를 잃고 죽음만이 발 앞에 놓여 있었다.
방화복을 입고 교육을 받는 모습을 올리는 이들 뒤로 나는 당장의 암 때문에 극심한 고통으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고 마약성 진통제로도 잠재우지 못해 병실 침상에서 뒹굴었다. 이런 내 상황에 자책과 절망이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수험 생활은 늪과 같아 길어질수록 피폐해지면서 가라앉으며 나를 잃어간다는데 딱 내가 그 꼴이었다. 그래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나약한 정신이라면 정신이다.
처음엔 분노가 가득했지만 점점 더 자책하게 됐다.
수험 생활의 고독함과 지루함도 이겨내지 못해 경쟁에 밀린 패배자. 패배로만 끝나지 않고 암까지 얻어 목숨까지 구걸하는 사람. 그렇게 나를 모질게 채찍질했다.
그러다 PET-CT 검사를 기다리던 날, 천장에 그려진 푸른 잎사귀와 하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고,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괜찮다, 다 잘 될 거다"라며 연신 내 눈물을 닦으셨다.
그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꼭 살아서 저 풍경을 나의 두 발로 직접 걸어 나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한 일은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다시 도전하는 거였다.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라는 꿈도 가졌었다. 그렇게 브런치스토리에 투병기를 기록하며 작가 신청을 재도전했는데 합격했다.
번번이 작가 신청에 떨어지다 합격한 순간 깨달았다. 중요한 건 화려한 미사여구나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진짜 나의 이야기를 드러낼 용기라는 걸. 글로써 나의 삶을 쓰면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고, 다른 이들이 내 글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 삶을 버티게 했다.
지금 나는 항암을 횟수로는 아홉 차례, 기간으로는 11개월째 치료 중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글을 통해 존재했고,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수험생활과 암이 앗아간 시간은 분명 있다. 허나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도 분명 내가 존재했기에 지금의 삶이 더 짙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내 인생의 구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구석 속 빛은 더 밝게 보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