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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vecO Nov 28. 2022

보고를 위한 보고

지금 이걸 보고라고 하고 있어?




 높으신 분으로부터 두 번째 큰 소리를 들었다.

이번 보고 건은 처음부터 삐그덕거렸다. 이 업무를 지시하는 팀장조차도 이 건의 논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나도 뭘 원하시는지 정확히 모르겠어 ‘

 업무 진행에 방향이 잡히지 않아 원하는 방향성에서 되묻자 팀장이 답한 말이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자가 저런 말을 꺼내는 게 맞는 것인가? 설령 본인이 논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내가 파악하고 이끌어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태클은 걸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하는 것은 모두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는 팀장...

 논점과 목표가 없으니 팀장에게 보고할 때마다 지시사항이 바뀐다. 세 번째 보고에 받은 피드백은 내가 처음 가져온 것과 동일하게 수정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내가 첫 번째 그렇게 해왔던 것은 까맣게 잊고 지시한 것이었다.

 논점이 없으니 불필요한 요소를 물고 끈질기게 늘어진다. 임원 보고 십오 분 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물고 늘어지길래 한마디 했다.

 ‘시간이 없는데 그 부분보다는 중심 내용을 위주로 리뷰해야하할 것 같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시켜서 억지로 보고하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들었다. 보고자의 자세가 안되어있다고 한다.


 오늘 확실히 알았다. 모든 팀원이 그를 싫아하는 이유를, 몇 번이나 그 사람이 팀장 자리를 내려왔던 이유를


 오늘 보고 건도 마찬가지다. 보고 초반 논점을 잘 잡고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궁금증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건이었다. 팀장은 나를 믿지 않지만 나는 만발의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확실히 나를 믿고 내 의견을 표현할 준비. 높으신 분이 내 앞에 앉았다. 보고를 시작하려고 한다. 팀장이 눈짓으로 내 옆에 앉은 선임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허탈하다. 이 정도의 품을 들일 건도 아닌 일을 팀장이 방어하지 못하여 온갖 고생을 한 건을, 안되는 것은 확실히 말해서 막았어야 할 일을 막지 못해서 들어온 지 2개월 차 신규직원에게 맡겨놓고, 그 고생을 한 건을 눈앞에서 뺏겼다.

 보고가 시작되고 한마디를 시작하자마자 언성이 높아졌다.

 논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처음 어필을 하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을 팀장의 지시로 제외하였는데, 역시나 문제였다. 누가 봐도 잘못돼 보이는 요소를 ‘이건 사실 트릭이에요!’ 하고 어필해야 할 그 트릭을 제외하니 잘못된 요소만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것만 보이니 언성을 높일 만했다.


‘지금 이걸 보고라고 하고 있어?’


라는 언성과 함께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세부 담당자들도 시간을 들여 파악해야 할 내용까지 모조리 모아서 내가 판단해야 하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데 품은 많이 드는 일은 절대 맡지 말아야 할 일 중 첫 번째라고 들었는데,

난 지금 그 일을 맡았다.


공수는 많이 들지만 성과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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