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준 Aug 01. 2024

15화. 하노르부직

<소설구슬> 소설 연재

 그날 밤 키야드 부족은 잔치를 열었다. 술과 고기를 아낌없이 먹으면서 그들은 태용이 어떻게 거인을 쓰러뜨렸는지를 반복해서 떠들었다. 그들은 태용이 번개처럼 빨랐다고 입을 모았다.

 태용에게 술을 따라주기 위해 부족민들이 줄을 섰다. 태용은 처음에는 예의상 그들의 술을 받다가 나중에는 먹다가 기절할 것 같아서 술을 거절했다. 그래도 부족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그들은 술에 취한 태용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칭송했다. 태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다.

 잔치는 그날 밤이 새도록 계속 열렸다. 태용은 배가 터지도록 고기와 술을 먹은 뒤 천막 안으로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태용은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간신히 일어났다. 옆에 이루진은 없었다. 그는 눈을 비비며 천막 밖으로 나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일어났냐며 반가워했다. 태용은 그들에게 이루진을 봤냐고 물었다.

 “부족장님의 천막에 있던데요.”

 태용은 호라진의 천막으로 걸어갔다. 어젯밤 잔치의 여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지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용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면서 호라진의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태용이 형!”

 이루진이 달려왔다. 태용은 이루진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이루진, 잘 잤어?”

 “네. 형 오늘 늦잠 잤네요?”

 이루진이 깔깔거리자 태용도 활짝 웃었다.

 “그러게.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천막 안에는 호라진과 부족의 장로 한 명이 탁자에 앉아서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어제 태용에게 칼을 준 그 노인이었다. 태용을 보고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용은 두 사람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받은 뒤 탁자 앞에 앉았다.

 “우린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어요.”

 호라진이 말했다.

 “태용 씨 덕분에 큰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에요. 오르혼의 부족장 에를렉은 반드시 다시 침공할 겁니다. 그는 어제의 굴욕을 씻기 위해 머지않아 대군을 이끌고 올 거예요.”

 “그럼 그 때도 태용이 형이 결투를 해서 이기면 되지.”

 이루진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태용이 결투에서 아주 쉽게 이겼으니 에를렉은 일대일 결투는 되도록 피할 거야. 오르혼은 우리보다 훨씬 병력이 많네. 그러니 아마 다음번에는 대규모 병력으로 전면전을 시도할 걸세.”

 태용은 무거운 기분에 잠겼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태용이 아무리 열심히 싸워서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도 키야드 부족 또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 때 이루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하노르부직을 해보면 어때요?”

 태용이 물었다.

 “그게 뭔데?”

 그러자 호라진이 끼어들었다.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해.”

 이루진이 반박했다.

 “하지만 태용이 형은 절대무공을 갖고 있잖아.”

 “절대무공을 가진 사람도 하노르부직에서 이길 수는 없어.”

 태용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도대체 하노르부직이 뭔데 그래요?”

 “부족장끼리 하는 결투라네.”

 노인이 설명했다.

 “자네가 어제 한 결투와 비슷하네. 부족장끼리 결투를 해서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지. 그렇게 해서 이긴 부족이 진 부족을 흡수하는 거네. 하노르부직은 초원의 절대적인 규칙이라서 하노르부직을 신청하면 상대는 그걸 거절할 수 없어.”

 “그건 반드시 부족장들만 싸우는 거예요? 대리인을 내세울 수는 없나요?”

 태용의 물음에 호라진이 대답했다.

 “가능해요.”

 “와우, 그런 게 있으면 바로 말하지 그랬어요. 제가 대리인으로 나가서 에를렉과 싸울게요. 그럼 키야드 부족이 오르혼을 흡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호라진이 말했다.

 “하노르부직은 일대일 대결이 아니에요.”

 “그럼?”

 “일대다 대결이에요. 한 명의 부족장이 초원의 모든 부족장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결투죠. 그래서 누군가가 하노르부직을 신청하면 상대방은 거절할 수가 없는 거예요.”

 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구나. 동시에 모든 부족장들에게 신청하는 거니까 말이군요. 그럼 지금까지 그걸 해서 성공한 사람이 있나요?”

 “당연히 아무도 없지. 만약 그걸 해낸 사람이 있다면 후스타이 초원은 진작에 통일되었을 걸세.”

 노인이 말했다.

 잠시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루진이 말했다.

 “하지만 태용이 형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태용이 형은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은 사람이잖아요.”

 그 말에 호라진과 노인이 동시에 태용을 쳐다봤다. 호라진이 물었다.

 “태용씨, 정말 맨손으로 곰과 싸워서 이겼어요?”

 “그렇다니까요. 설마 지금까지 여태 안 믿었던 거예요?”

 “그야 당연히...... 태용 씨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곰을 이기는 건 좀......”

 “나 참, 사람을 이렇게 못 믿다니.”

 태용은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태용이 웃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게 있다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요. 족장님, 저를 족장님의 대리인으로 내보내서 하노르부직을 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이긴다면 키야드 부족은 앞으로 영원히 다른 부족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태용 씨, 후스타이 초원에는 모두 81개의 부족들이 있어요.”

 호라진이 강조했다.

 “그럼 태용 씨는 80명의 부족장과 동시에 싸우게 되는 거예요.”

 “할 수 있습니다.”

 태용은 바로 대답했다. 그의 뻔뻔한 대답에 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태용, 자네가 위대한 전사라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동시에 80명의 전사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어.”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진다면 80개의 부족이 우리 부족 전체를 쪼개서 나눠 갖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위험한 도박입니다.”

 호라진의 말에 태용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도박이 아닙니다. 말했잖아요, 전 맨손으로 곰을 이겼다니까요. 80명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어요. 대신 부족장님,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세요.”

 “어떤 거죠?”

 “제가 하노르부직에서 이겨서 81개의 부족을 모두 통일하면 부족장님은 이제 후스타이 초원에 대제국을 건국하게 될 거예요. 그 때가 되면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발카르 왕국으로 가서 소설구슬을 되찾는 걸 도와주세요.”

 태용은 호라진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황제로 만들어드릴게요. 그 대가로 제가 구슬 하나만 찾게 도와주세요.”

이전 14화 14화. 오르혼 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