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슬> 소설 연재
그 날 태용은 혼자서 목검을 든 키야드 전사 백 명과 맞서 대결을 했다. 그리고 그들 전부를 간단하게 쓰러뜨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태용의 무공에 호라진을 포함한 부족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 중에는 신을 봤다면서 태용의 앞에 엎드리는 자도 있었다. 태용은 그런 그들에게 자신은 신이 아니라 작가 지망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호라진의 친서를 지닌 여든 명의 사신들이 초원 각지로 떠났다. 그 친서에는 후스타이 초원 전체의 모든 부족장들에게 미증유의 대결을 제안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후스타이 초원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 80명의 부족장들은 모두들 키야드 부족장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노르부직을 제안 받은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80명의 부족장들은 약속 날짜까지 초원의 중심에 도착하기 위해 각자의 부족을 이끌고 출발했다.
엄밀히 말해서 하노르부직의 대리인은 부족장의 가까운 가족만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80명의 사신들이 출발한 직후 태용은 호라진과 결혼식을 올렸다.
모든 키야드 부족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용은 후스타이 초원의 전통 혼례를 체험했다. 그는 키야드 부족의 전통 의상을 입고 특이한 의식 몇 가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특이한 술도 몇 가지 마셨고 특이한 맛의 떡과 과자도 맛봤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진지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부족의 모든 사람들이 태용과 호라진의 결혼을 축하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히 이루진이었다. 이루진은 결혼식 내내 신이 나서 깡총거리며 뛰어다녔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잔치가 끝난 뒤 사람들은 태용과 호라진을 신혼방으로 꾸며진 천막 안에 남겨두고 떠났다. 두 사람은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태용은 잔뜩 긴장한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는 지금 곰과 싸우기 전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태용 씨.”
호라진이 물었다.
“긴장했어요?”
“네.”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처럼 위대한 영웅이 왜 긴장을 하고 그래요?”
“그러게요, 왜 이렇게 긴장이 되지.......”
호라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난 부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은 소설구슬을 얻기 위해서 이 결혼을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난 이 결혼이 마냥 정략결혼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좋은 남자니까요.”
그녀는 태용에게 바짝 붙어서 속삭였다.
“당신은 어때요?”
태용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저도 당신을 좋아해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당신은 진짜 예쁘잖아요.”
“내가요?”
호라진은 큰 소리로 웃은 뒤 태용을 끌어안고 물었다.
“태용 씨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에요?”
태용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
그러자 호라진은 몸을 떼더니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태용은 그녀의 눈이 아주 맑고 깊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나도 포함시켜주면 안될까요?”
그 말에 태용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호라진을 끌어당겨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는 태용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로써 모든 절차는 준비를 마쳤다. 초원의 중심에는 여러 부족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수많은 부족들이 줄지어서 커다란 원의 형태를 그리며 진을 쳤다. 그 원의 한가운데에서 결투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마침내 초원의 81개의 부족이 모두 모이자, 태용은 자신이 키야드 부족장의 남편이자 대리인임을 밝혔다.
81명의 부족장들 역시 대부분 대리인을 내세웠다. 주로 그들의 아들이나 형제 중에서 칼을 잘 쓰는 이가 대리인으로 나왔다. 물론 부족장이 직접 참가하기로 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태용의 몸을 조각내는 즐거움을 대리인에게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든 명의 전사들 중에서 태용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빨리 하노르부직을 끝내고 키야드 부족민과 가축과 재물을 나눠가질 생각뿐이었다.
대결이 벌어지기 하루 전 날, 초원의 신에게 바치는 제사가 열렸다. 81개의 부족이 함께 치르는 거대한 제사였다. 유목민들은 신에게 복을 빌면서, 하루 빨리 초원에 평화가 오길 기도했다.
마침내 날이 밝았다. 하노르부직이 열리는 당일이었다. 태용은 키야드 부족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장인의 칼을 들고 천막을 나섰다.
호라진이 그를 안아줬다. 그는 아내와 포옹한 후 이루진과도 포옹했다.
“갑시다.”
태용은 그렇게 말하고 걸어갔다. 호라진과 이루진, 그리고 키야드 부족의 장로들도 그를 따라갔다.
81명의 부족장들과 그들의 일행은 거대한 원의 중심을 향해서 걸어갔다. 마침내 중앙에 도달한 그들은 미리 준비된 검투장 앞에 섰다.
땅 위에 커다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싸움은 그 원 안에서 이뤄졌다. 대결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이 원을 벗어난 사람은 즉결 처형되었다.
태용은 원 앞에 서서 검을 뽑았다. 호라진이 그의 칼집을 받아들었다. 호라진이 그에게 속삭였다.
“반드시 이기세요.”
태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루진은 긴장과 흥분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태용은 그에게 가볍게 웃어보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몸을 돌려 원 앞에 섰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잠시 서 있다가 원 안으로 발을 디뎠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그가 원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80명의 부족장과들도 칼을 뽑아들고 원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태용은 원의 중심으로 걸어가 정중앙에 섰다. 그러자 여든 명의 전사들이 그를 둥글게 에워쌌다.
태용은 칼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여든 명의 전사들도 칼을 들었다.
키야드 부족의 장로 한 명이 커다란 징을 들고 왔다. 징이 울리면 즉시 하노르부직이 시작되었다.
태용은 제자리에서 천천히 돌면서 자신을 둘러싼 여든 명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징이 울리자마자 달려들어 태용을 수백 조각으로 토막 내려 하고 있었다.
초원 위로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장로가 채를 높이 들었다.
태용은 눈을 감았다.
징소리가 울리는 순간, 태용은 눈을 떴다.
여든 명의 전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칼날이 동시에 그를 덮쳤다. 태용은 그 칼들을 한꺼번에 막으면서 몸을 솟구쳤다. 그리고 전사들을 뛰어넘어 땅에 그려진 원의 가장자리까지 물러났다.
여든 명의 전사들이 다시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시에 여든 개의 칼이 그를 덮칠 수는 없었다. 그를 둘러싼 칼은 열 개 남짓이었다. 태용은 자신에게 향하는 그 칼들을 전광석화처럼 막아낸 뒤 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열 명을 베었다.
잘린 팔다리와 머리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렸다. 앞줄이 모두 쓰러지자 그 다음 줄이 달려들었다. 태용은 그들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뜨렸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더 이상 태용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태용은 땅에 떨어진 누군가의 칼 한 자루를 집었다. 그리고 양 손에 칼을 쥔 채 외쳤다.
“덤벼!”
다시 수십 개의 칼날이 쏟아졌다. 태용은 이번에는 그들 모두를 상대하며 원의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앞에서도, 옆에서도, 뒤에서도 칼날이 후비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뒤에서 날아드는 칼들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태용은 양 손에 쥔 두 개의 장검을 휘두르며 바람처럼 빠르게 춤을 췄다.
그것은 실로 경이로운 칼춤이었다. 수십 개의 칼날을 막는 데는 양 손에 쥔 칼 두 자루면 충분했다. 두 개의 칼이 수십 개의 칼날을 다 막아내면서 상대의 빈틈을 베고 찔렀다. 태용의 발밑으로 흙먼지가 일었다. 태용은 커다란 원 내부 전체를 훑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가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출 때마다 칼이 땅으로 떨어지고 사람의 몸이 절단 났다.
마침내 태용이 한바탕 춤판을 끝내고 멈춰 섰을 때 원 안에 서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야차 같은 모습이었다.
태용은 왼손에 쥔 칼을 땅에 던졌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장인의 칼을 높이 들어올렸다.
다시 한 번 징이 울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함성이 초원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