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슬> 소설 연재
로봇은 키가 태용의 열 배 정도 될 법한 거대한 덩치였다. 단순히 일반 로봇의 크기를 키운 형태 같지는 않았고, 원래부터 전투용으로 제작된 거대 로봇 같았다.
로봇이 태용을 향해 한 손을 뻗자 손이 변형되면서 거대한 총으로 변했다.
총이 발사되는 순간 태용은 몸을 날려 피했다. 태용이 서 있던 자리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흙이 튀어 오르며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총알 대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사하는 총 같았다.
로봇이 달아나는 태용을 쫓아가며 계속해서 총을 쐈다. 태용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간신히 총을 피했다. 그는 재빨리 정원의 담을 뛰어넘어 밖으로 빠져나갔다.
로봇이 다른 손을 등 뒤로 뻗더니 등에 달린 거대한 도끼를 뽑아들었다. 그러더니 태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태용은 골목 사이로 빠져나와 넓은 길을 향해 달아났다. 로봇이 그를 쫓아오며 쉬지 않고 에너지포를 쐈다. 태용이 몸을 피할 때마다 그가 있던 자리가 폭발과 함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거대한 로봇은 주변에 있는 주택들을 짓밟으며 태용을 쫓아왔다.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과 거리의 사람들이 로봇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로봇은 사람들 사이에 섞인 태용을 찾으며 마구 총을 쏘고 도끼를 휘둘렀다. 거대한 도끼에 찍힌 사람들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경찰 몇 명이 뛰어와서 로봇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총알은 로봇의 금속 표면을 맞고 힘없이 튕겨나갈 뿐이었다. 로봇은 누가 자신을 공격하는 발견하자 경찰들을 향해 총을 쐈다.
태용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넓은 길로 나왔다가 가로등 뒤에 숨었다. 로봇은 태용을 찾으며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총을 쏘고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지원요청을 받은 경찰차 몇 대가 나타나 경찰관들이 로봇에게 권총을 쐈다. 하지만 로봇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로봇이 총을 쏘자 경찰차가 통째로 폭발했다.
‘빨리 저 놈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피해가 엄청 커지겠어.’
태용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뽑으려다가 멈칫했다.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작은 반지를 본 것이다.
그 반지는 기계도시에 갔을 때 늙은 로봇이 준 선물이었다. 습관처럼 끼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태용은 반지에 달린 작은 보석을 눌렀다. 그러자 그 순간 반지에서 강력한 파동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반지에서 나온 파동으로 로봇은 잠시 어지러운지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로봇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끼를 휘둘렀다.
‘아무래도 한 번으로는 안 되나 보군.’
태용은 로봇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반지의 보석을 눌렀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강력한 파동이 나왔다. 이번에는 로봇에게 더 큰 타격을 준 것 같았다. 로봇은 도끼를 떨어뜨리고는 비틀거렸다.
하지만 잠시 비틀거리던 로봇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놈은 태용을 발견하고 태용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젠장.”
에너지포가 덮치기 직전에 태용은 온 몸을 날려 피했다. 그가 도망치는 곳마다 거대한 에너지포가 주택과 자동차와 아스팔트 바닥을 크게 파괴했다.
태용은 이리저리 총을 피하면서 로봇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태용이 가까이 오자 로봇은 거대한 도끼를 들어 올리더니 태용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도끼날이 태용의 바로 옆에 있는 땅에 박혔다.
로봇이 땅에서 도끼를 뽑는 순간, 태용은 도끼 끝에 매달렸다. 그는 도끼날과 함께 하늘을 향해 솟구치다가 로봇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로봇의 머리에 매달린 태용은 반지의 보석을 다시 한 번 꾹 누른 뒤 반지를 낀 주먹으로 로봇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 순간 엄청난 폭발과 함께 로봇의 온 몸에서 불꽃이 튀었다. 로봇은 손에 든 도끼를 떨어뜨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로봇이 땅에 쓰러지면서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났다.
땅으로 내동댕이쳐진 태용은 바닥을 잠시 구르다가 일어나 로봇에게 다가갔다. 땅에 쓰러진 거대한 로봇은 온 몸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로봇이 작동을 정지하면서 로봇의 정수리에 있는 뚜껑이 저절로 열려져 있었다. 태용이 뚜껑을 잡아당기자 커다란 뚜껑이 벗겨지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태용은 정수리가 열린 로봇의 거대한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종실이었다. 조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커다란 은색 금고였다. 그리고 금고 바로 앞에는 총리대신이 쓰러져 있었다.
태용은 총리대신의 멱살을 잡고 거대 로봇의 밖으로 끌어내 땅바닥에 팽개쳤다. 총리대신은 온 몸을 경련하고 있었다.
태용은 그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서 총리대신의 검은색 가면을 벗겼다.
가면과 함께 대신의 머리를 감싼 두건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본 태용은 깜짝 놀랐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넌 누구야?”
태용은 총리대신의 옷을 잡아당겨 찢었다. 그것은 확실히 로봇이었다. 그것은 태용이 기계도시에서 만난 로봇, 그리고 태용에게 소설구슬에 대해 알려준 유민기와 비슷한 외형의 로봇이었다.
태용은 로봇을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로봇의 정수리에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7135라는 네 자리의 숫자였다.
“잠깐만, 그럼 너는......”
태용은 기계도시의 늙은 로봇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럼 네가 바로 최승독이라는 사람을 죽인 그 로봇이야? 소설구슬을 욕심내서 인간을 죽인 로봇 말이야.”
7135의 머리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로봇은 천천히 떨리는 손을 들어 태용의 멱살을 잡았다.
“무한의...... 소설은..... 내 거야......”
로봇은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띄엄띄엄 말했다. 태용은 순간 자기 앞에 있는 게 로봇이 아니라 수천 년 묵은 노욕을 품은 징그러운 노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어차피 소설구슬을 사용하지도 못해. 그런데 왜 그렇게 그 물건에 집착하는 거야?”
“왜냐하면......”
로봇이 힘겹게 내뱉었다.
“사용할 수...... 없으니까......”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늙은 로봇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태용은 한숨을 쉬며 7135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거대한 로봇의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금고는 조종실 뒤쪽에 밧줄로 고정되어 있었다. 태용은 금고 문에 달린 기다란 숫자 다이얼을 하나씩 돌려 비밀번호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는 유민기가 알려준 번호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마지막 번호를 맞춘 뒤 다이얼 옆에 있는 작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금고 문이 살짝 열렸다.
태용은 숨을 죽인 채 금고 문을 잡아당겼다. 거대한 금고 문짝은 큰 힘을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열렸다.
거대한 금고 내부에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은 아주 작았다. 그리고 그 작은 공간 안에 구슬이 있었다.
구슬은 꿈에서 본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비로운 푸른빛을 발하면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 같았다.
태용은 떨리는 손을 뻗어서 구슬을 집었다. 구슬은 차갑지 않고 약간 따뜻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벼웠다.
태용은 구슬을 손에 쥐고 내려다보다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