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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Aug 01. 2024

19화. 현기증

<소설구슬> 소설 연재

 7135는 발카르 왕국이 건국되던 초기에 발카르 왕가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여러 왕을 거치면서 발카르 왕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인간인 아니었던 그에게 권력이 줄 수 있는 쾌감이 한정적이었는지, 아니면 그가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해서 무한의 소설구슬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부분은 발카르 왕을 포함해서 발카르 궁전의 누구도 태용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태용은 7135가 자신이 사용할 수도 없는 소설구슬에 왜 그토록 지독한 집착을 보였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아마 그 로봇은 최승독과 비슷한 정신을 가졌을 것이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무한에 대한 동경 말이다. 물론 그 동경의 마음이 7135가 만들어진 직후 생긴 일종의 오류인지, 아니면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로봇의 회로 속에서 점점 비뚤어진 마음이 빚어낸 집착인지, 태용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그날 밤의 소동은 궁전에서 자고 있던 발카르 왕에게 곧장 보고되었다. 새벽에 깬 왕은 총리대신이 자신의 집 밑에 묻혀있던 거대 전투로봇을 몰고 시민들을 학살하다가 후스타이 제국의 용감한 태왕이 그를 물리쳤다는 소식을 듣고 기겁했다.

 왕은 또다시 목숨을 잃을 뻔한 태용에게 거듭 사과했다. 태용은 너그럽게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태용은 최대한 빨리 발카르를 떠나고 싶었지만, 발카르에 오자마자 떠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며칠 더 머물다가 사절단 일행을 이끌고 왕국을 떠났다.     

 후스타이 제국까지 다시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말을 타고 가면서 태용은 틈만 나면 주머니에서 소설구슬을 꺼내 살펴보곤 했다. 그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튼튼한 가죽주머니에 넣은 뒤 자신의 품속에 끈으로 묶어두었다. 그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구슬이 제대로 있는지 틈만 나면 꺼내서 확인했다.

 후스타이로 돌아가는 여정 동안 태용은 빨리 그 구슬을 삼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는 집에 돌아갈 때까지 참지 말고 그냥 당장 구슬을 삼킬까 했지만, 구슬을 삼켰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부작용으로 길바닥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참기로 했다.

 하지만 발카르를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 그는 말을 타고 걸어가면서 구슬을 만지작거리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구슬을 입에 넣었다.

 그는 빛나는 구슬을 입에 넣고 잠시 물고 있다가 꿀꺽 삼켰다. 작은 구슬은 목 너머로 쉽게 넘어갔다.

 태용은 긴장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곧 문학적 영감이 쏟아지리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기다렸지만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 결국 그 날 날이 저물고 밤이 될 때까지도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용은 실망감을 애써 억누르며 초원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부하들이 친 천막 안에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밤새 뒤척거리다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들은 아침을 먹고 다시 말을 타고 출발했다. 해가 뜨면서 초원 전체가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푸른빛을 되찾았다. 말을 탄 이들의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태용은 말에 앉은 채 점점 초조함으로 지쳐갔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모든 모험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불안해졌다.

 그가 불안과 초조로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머리 위로 해가 중천에 도달했다. 태용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태양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뒤집히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말에서 떨어졌다. 그는 땅에 닿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다.     

 태용이 눈을 떴을 때는 커다랗고 호화로운 천막 안이었다.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얼굴을 닦아주던 시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전하, 정신이 드십니까?”

 태용이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태왕 전하의 침실입니다. 전하께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신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벌써 일주일이나......”

 시종은 황제에게 알리겠다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가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황제는 한달음에 태용의 침대로 달려와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여보,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태용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왜 그래요?”

 호라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보여요.”

 태용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한이 보여요.”

 그는 손을 들어 허공을 더듬다가 아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아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무한이 보여....... 아냐, 그게 아니에요.”

 그는 황홀한 표정으로 호라진에게 속삭였다.

 “내가 바로 무한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호라진을 끌어안았다. 호라진 역시 그를 꼭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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