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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May 06. 2021

근로자의 날? 노동절? 똑같은 거 아닌가요?

근로자? 노동자? 같은 거 아닙니다.

5월의 첫 날이 매일 시끌벅적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던 급식실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되기 전에는 급식조리원 분들이 5월 1일에는 쉬는 날이니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오라는 안내를 받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어린 초등학생 때는 왜 그 날이 되면 급식실이 문을 닫는지 알지 못했었죠. 그러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노동운동의 역사를 배우면서 급식실 문을 닫던 그 날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고, 또 어디에서는 ‘노동절’이라고 하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근로자도 노동자도 어차피 다 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굳이 ‘근로자의 날’, ‘노동절’로 구분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죠. 노동절은 옛날 말인 것 같고, 근로자의 날은 좀 더 최신 표현인 것 같다는 어렴풋한 인상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로자와 노동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 한 걸음 더 나아가 볼까요?



근로자와 노동자?
근로자? 노동자? 같은 거 아닙니다. 출처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사전은 근로자와 노동자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근로자는 ‘부지런히 일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노동자는 ‘몸을 움직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정신적·육체적인 노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보는 반면, 근로자는 사용자 입장에서 바라본 ‘열심히’ 일하는 직원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전적 정의가 이렇다보니, 근로자는 자본과 권력이 시킨 일을 하는 사람, 즉 산업화 사회의 부속 정도로 전락시키는 용어로 인식됩니다. 반면에 노동자는 사회의 주체이며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의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 인식됩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동안 여러 노동단체 및 의원들이 ‘노동자’라는 용어를 공식화하기 위해 제안해왔습니다.



근로자는 이제 그만, 노동자를 노동자로 불러주세요

사실 그동안 ‘근로자’라는 이름 대신 ‘노동자’라는 이름을 공식명칭으로 바꾸려는 노력들은 꾸준히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자치 법규에 쓰인 ‘근로자’라는 용어를 ‘노동자’로 바꾸는 개정이 추진된 바가 있습니다. 충북도의회 이상식 의원의 개정안 발의로 시작된 논의인데요, ‘충청북도 근로자 권리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근로자를 노동자로 ㅂ꾸고, 자치단체가 비정규직 노동자 등 취약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뼈대로 하는 개정안이었습니다. 당시 이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가 사용자에 종속돼 일한다는 개념으로 ‘근로 정신대’ 등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용어라며 사용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에는 더 넓은 차원에서의 용어 개정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 역시 주요 골자가 모두 법률상 근로자라는 용어를 노동자로 바꾸자는 것이었죠.


근로자를 노동자로 용어의 전면개정을 제안한 이수진 의원, 출처 : (좌) 의안정보시스템 의안 원문, (우) 한국경제신문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총 11개의 법안에서의 용어개정을 제안하며 헌법에도 근로를 노동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죠. 사실 이수진의 의원이 지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낸 첫 번째 법안 역시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의 날로 바꾸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률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국회를 떠돌고 있습니다. 올해 노동절에는 반드시 ‘노동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언제쯤 지켜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노동자’

“거리에 내쫓겨 올 데 갈 데가 없는 우리들은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던 스물한 살 여공 김경숙의 외침은 회사의 폐업으로 인해 시작됐습니다. 자본금 100만원으로 시작한 신생 수출회사였던 YH무역은 5년 만에 엄청난 성장을 이뤄내며 면목동에 대규모 가발공장을 세우는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상경했던 10대 소녀들이 그 기적의 주역이었습니다. 그 주역들은 YH무역의 기적을 이뤄내기 위해 납기일이 다가오면 14시간, 심지어는 24시간을 일하면서도 최저생계비 만도 못한 월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잠도 쉼도 없이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에게는 매일이 생사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과도 같았을 겁니다. 반대로 회사는 그런 희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수출 천 만 달러라는 성과를 거뒀죠. 그런데 문제는 여성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그 성과가 몽땅 회장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사용됐다는 겁니다.


당시 YH무역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사전 고지 없이 일방적으로 폐업을 통보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게 된 여성노동자들은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로 투쟁하기 시작했다. 출처 : 나무위키


결국 회장의 횡령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회사에 항의해도 통하지 않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신민당사로 찾아가 투쟁을 결의했죠. 의원이고 당 대표고 가리지 않고 잡아가는 경찰들이 들이닥칠 때 스물한 살의 김경숙 열사는 동지들과의 투쟁을 외치며 세상을 등졌습니다. “YH무역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유신정권 몰락의 시발점이 된 사건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탐욕과 권력에 희생당한 여성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노동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자 간의 경쟁을 조장해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시행되던 도급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해야겠다고 판단했던 주체성,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행동하던 적극성, 각박한 삶 속에서도 의지와 연대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처절함이 모여 만들어낸 ‘역사’가 YH무역 사건의 본질인 것입니다.


과거 YH무역의 가발공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녹색병원의 현판, 출처 : 일다

▲ 과거 YH무역의 가발공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녹색병원의 현판, 녹색병원 자리가 YH무역이 있던 자리이며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임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있다. 


 부당함에 저항하고 자신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정신을 이어 그 공장의 자리엔 현재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녹색병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녹색병원에는 이런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이곳은 YH무역이 있던 자리로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있었던 역사적 장소입니다.”



아직도 소외된 노동자들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노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엔 소외된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난방도 되지 않는 싸늘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새벽배송, 로켓배송 등을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죽음의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쪼개기 계약 등으로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일용직노동자들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총 882명으로 전년대비 3.2%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망자의 51.9%는 건설업 종사자로 전년대비 30명이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과중해진 업무량으로 고통을 호소하던 택배 등 운수·창고통신업 노동자들도 6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근 10년간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발생추이, 출처 : 고용노동무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 발표


 아직도 산업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노동자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산업재해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부담하는 책임의 강도 또한 아직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의 목숨값은 ‘사람’의 목숨값이라기엔 한없이 가볍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현장에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산업재해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제안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은 몇 년 째 국회에 떠돌며 먼지만 쌓여가고, 과잉입법이라는 논란이 일자 대안으로 제시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역시 그 실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올해로 48주년을 맞는 노동절, 노동자가 노동자의 이름을 되찾고 삶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모두가 함께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니까요.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예은

이미지 출처 | 본문 속 이미지 하단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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