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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Jun 07. 2021

6월 6일, 망종의 진실과 거짓 ?!

벌써 일 년의 절반을 달려, 6월 달력을 펼칠 시기입니다. 매일 달력을 보면 조그마하게 적혀있는 음력 날짜와 절기를 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다들 그 작은 글자에도 관심을 자주 가지시나요? 아마 조그마하게 적혀있는 절기보다는 단순히 큰 숫자의 양력 일자를 많이 확인하실 겁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겐 그 작은 글씨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고 합니다. 바로 ‘절기’의 중요성 때문인데요. 절기란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적 구분을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황도에서 춘분점을 기점으로 15° 간격으로 점을 찍어 총 24개의 절기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번에 함께 살펴볼 ‘망종’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있으며 양력 6월 6일에 해당합니다. 망(芒)은 보리와 같은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벼와 같은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시기에 해당하며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로 중요한 시기를 뜻합니다.


(왼)중고생 보리베기동원, 1981년, 지리산 함양 미디어자료관 소장  |  농번기 일손돕기 보리베기 작업 청내 전직원, 1988년. 지리산함양미디어자료관 소장   


망종에 관해 농사와 연관 있는 여러 속담이 있습니다. 먼저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입니다. 이 속담은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인데요.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시기가 찾아오니 절기에 주의하여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에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시기의 농가에선 비가 끊임없이 내리며, 모내기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겁니다.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의 생활에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 있고, 농경사회에선 기후의 변화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절기의 개념과 활용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과거 우리의 달력에서도 그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1950년대의 달력은 2020년의 달력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달력에는 절기가 쓰여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과거 1950년대 달력에는 절기는 필수적으로 적혀있었고 따로 표로 정리해놓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왼)1958년 함평소주양조장 광고 달력. 중앙에 음력 절기 표 삽입 | 단기 4288년 서기1955년 을미년력, 축산동업조합연합회 제작, 하단부 절기표 삽입.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왼)단기 4291년 대한민국 통일만세 무술년력, 경상북도광명원자치회 제작, 중앙 절기 표 삽입. | 1950년 달력, 상단부 절기표 삽입, 대한민국역사박물관소장


그리고 6월 6일은 절기로는 망종이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충일이기도 합니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입니다.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1145호에 의해 ‘현충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1975년 1월 27일에는 현충일로 개칭되었고, 1982년 5월 15일에는 정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6월 6일이 현충일이 되기까지 그 배경에 대한 견해는 망종과 연관이 있다는 견해와 관련이 없다는 견해 등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습니다.


망종과 관련이 있어 6월 6일로 정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견해이며, 인터넷에서도 현충일과 망종에 관련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처와 국가기록원에서도 현충일이 6월 6일인 이유에 대해 망종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6월은 6·25를 상기함이며, 6일은 일년 24절기중 제일 좋은 한철인 망종일로서 보리 가을이 접어들고 이양이 시작되는 싱그러운 계절로서 가신님의 넋을 기리는데 알맞은 때로서 예로부터


24절기중 손이 없다는 청명일과 한식일에는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또한 예전에도 고려 현종 5년 6월 6일은 조정에서 장병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는 날이었으며, 도교에서는 청서지일로 명절이라는 기록이 있어 이날을 현충일로 정했다 한다. ”


- 국가보훈처의 ’현충일 제정의의와 유래‘ 설명 부분 발췌 -


“1956년 4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고 공휴일로 정하였다. 현충일을 6월 6일로 제정한 이유로, ‘6월은 6·25 사변일이 들어있는 달이고, 24절기 중의 하나인 제사를 지내는 망종이 6월 무렵이며, 1956년의 망종이 6월 6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 국가기록원의 법정기념일 ‘현충일(6월 6일) 주요 내용’ 소개 부분 발췌 -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망종에 제사를 지냈다는 설명은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은 정월, 단오, 한식, 추석이며, 일반적으로 망종은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한창일 때입니다. 그러므로 농가에서는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제사와는 거리가 있는 절기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망종에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으며, 이를 근거로 현충일을 정했다는 설명과는 반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6월 경신 敎書를 내려 말하기를, “防戍軍 중에 길에서 죽은 자는 관청에서 시신을 거두는 도구를 제공하고, 해골을 상자에 담아 驛馬에 실어 집에 빨리 보내도록 하라. 돌아다니는 行商으로 죽어 성명과 本貫을 알 수 없는 자는 소재지의 官司에 그를 위해 임시로 장사 지내고 늙고 젊은 정도의 용모 특징을 기록하여 실수가 없게 하며, 이를 영원히 법식으로 삼으라.”라고 하였다.


-『고려사』현종, 1014년 6월 6일(음) 庚申, 1014년 7월 5일(양) -



또한 현충일의 역사적 전통을 『고려사』에 나오는 고려 현종 5(1014)년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위해 거국적인 추모행사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방편으로 전사한 군인 등에 대한 제사를 지내도록 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이 같은 내용을 현충일의 근거로 삼았다는 것은 논리적인 측면에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도 제시되고 있는 만큼 ‘현충’이라는 용어와 관련해서 현충일 제정의 역사적 연원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검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망종에 관한 이모저모를 알아보았습니다. 망종과 관련된 현충일의 정확한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모로 변화하는 생활상과 절기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망종 이후 하지가 찾아오면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더웠던 여름날에도 호국을 위해 힘써주셨던 국가유공자, 국군장병 등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수십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과 함께 현충일을 맞이하여, 가슴 깊이 감사함의 하루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왼)어머니와 아들의 이별, 1950. 12. 18,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 제2연평해전 전사자 전적비, 출처 국가보훈처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민경

사진자료 | 본문 내 이미지 하단 표기

참고자료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망종(芒種)”

국가보훈처, “현충일의 제정유래와 현충의 어원”

국가보훈처, “현충일 제정의의와 유래”

국가기록원, 국경일과 법정기념일 “현충일(6월 6일)”

안종은, 강정수. "24절기에 관한 연구." 동의생리병리학회지 15.5 (2001): 669-676.

황민호. "해방 이후 보훈정책의 추진과 사회적 함의의 변화." 숭실사학 0.45 (2020): 32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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