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학기제
어느새 더운 공기가 가시고 낮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찬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것은 가을과 9월, 그리고 ‘2학기’ 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학교의 학기제도와 1년의 생활주기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각 달 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3월은 진정한 새해가 온 것 같은 개학의 기분, 8월은 방학이 끝나가는 걸 알리는 매미소리, 9월은 싱숭생숭한 마음가짐과 오랜만에 꺼내는 긴팔, 12월은 텁텁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실내히터와 마지막 장의 달력.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가끔은 만약 9월이 새학기의 시작이었다면, 3월에만 느껴지는 기분이 과연 9월에도 느껴졌을까? 하고 생각해보게됩니다. 지난 2020년 3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늦춰지면서 9월 신학기제를 검토해야한다는 뉴스가 쏟아지기도 했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달에는 우리나라의 3월학기제가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이전에는 어떤 학기제를 도입했었는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군정기, 9월 학기제
해방을 맞이한 후, 우리나라는 미군정기를 겪으며 9월 학기제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미군정은 한반도에 상륙했던 1945년 9월, 일반명령 제4호를 통해 공립 초등학교는 9월 24일 개학하도록 했고, 사립학교는 학무국의 허가를 받아 개학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공․사립학교의 재개에 대한 조치가 내려진 이후인 1945년 10월말 경부터 활동을 시작한 미군정 자문기구인 조선교육심의회는 ‘1학년의 학기 수, 개학일정과 방학일정’이 포함된 교육제도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는데요. 이 논의의 결과로 인해 일제강점기에 시행되었던 4월 신학기제와 1년 3학기제가 9월 학기제와 1년 2학기제로 변경되었습니다.
'추기(秋期)를 신학기로 연 2기'
새로운 교육제도가 서게 된 데 따라 지금까지의 1년간 3학기제도는 폐지되고 1년간을 두 학기제도가 된다. 이 새로운 교육제도는 내년 9월부터 실시되며 제1학기는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제2학기는 3월부터 8월까지로 되는데 8월 한 달과 12월에서 1월 사이에 한 달 동안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으로 한다. …… 이상과 같이 신교육제도가 내년부터 실시됨에 따라 현재의 각 학교 각학년은 명년 8월까지 연장되며……
©『조선일보』 1945년 12월 17일, 「신생 조선의 새 학제」
당시 조선일보에서 보도된 바에 따르면, 새로운 교육제도가 “현재 미국, 영국, 불란서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육제도를 본받은 것으로 한 나라와 딴 나라 사이의 문화교류에 있어서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쓰게 된 것이다”고 말하였으며, 9월 학기제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9월 신학년과 2학기제는 국제적이고, 미군정 교육정책의 장점 중 하나’ 로 정리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9월 학기제로 개편이 미국식 교육제도라는 비난과 함께 미측의 압력과 주장이 들어갔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2. 정부수립 후, 9월 학기제와 4월 학기제의 혼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부터 학기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처음엔 문교부(현 교육부)는 9월 학기제를 유지하려했고, 현직 초중등학교장은 졸업과 입학시기, 계절적인 이유 등으로 4월 학기제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9월 학기제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회계연도 때문인데요. 각 나라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세입 ·세출을 구분하기 위하여 설정되는 일정한 기간인 회계연도가 존재합니다. 당시 미군정의 회계연도는 일제강점기의 ‘회계법’을 그대로 인정하여 4월 1일부터 다음 해 3월 31일까지였습니다. 즉, 학기의 시작은 그 나라의 회계연도에 맞춰 시작해야하는데, 해방 후 무조건 미국제도에 맞춰 9월에 학기를 시작해서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월 학기제로 변경하는데 문교부에서도 찬성의 뜻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일부 당국자를 제외한 식자들은 대체로 4월설을 지지하고 있으니 무릇 학년초는 대체로 그 나라의 회계연도와 시작을 같이하는 것으로 …… 그런데 해방후 무조건으로 미국제도가 시작되는우리나라의 학년이 9월에 시작되므로 학교경영상 혼란도 막대하며 그뿐 아니라 학기시험과 입학시험을 2월초와 8월초인 혹한 혹서에 치르게 되어 교원과 학생을 괴롭히며 더구나 4월이란 신춘과 함께 새로운 학년이 출발하는 것이 학생에 주는 심리적 효과는 9월에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국회 측 초안에 학년초는 4월로 되었으며 문교부측도 여기에 대해서는 점시(點示)의 찬의로 표시하고 있다.
©『주간서울』1949년 10월 31일,
「교육법안 제정과 관련한 문교부와 국회 대립」
하지만 국회에서는 일제강점기에 4월로 했으니 막연히 4월로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4월은 학생들의 마음은 들떠있고, 기후는 가장 자극적이어서 학생들을 공부시키는데 부적당한 철이라며 3월 학기제에 대한 의견도 조금씩 등장하기도 했죠. 하지만 4월 학기제를 주장하는 문교사회위원회 측은 “기후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예산관계가 3월말하고 4월에 되는 관계도 있고, 또한 가장 더운 때 하는 것보다 4월을 신학기로하는 것이 모든 주위환경이 더 좋기 때문”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4월 학기제는 찬성 87표, 반대 0명으로 가결되어 1949년 11월 30일 교육법에 조항이 새겨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계획대로 순탄하게 진행되기가 어려웠는데요. 바로 6.25전쟁의 발발 때문입니다. 정말 당시의 대한민국은 한치앞도 예측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아 공부를 못했고, 그 학생들이 졸업이나 진급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1950년의 학년말을 8월 말일로, 1951년의 학년초는 9월초로 그 해에만 9월 학기제를 다시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49년에 제정됐던 4월학기제는 1952년에서야 법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3. 3월 학기제의 첫 발걸음
1957년 문교부에서는 대학의 학년 시작을 1개월 앞당겨 3월 1일로 변경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4월 초 부터 새 학년이 되어도 등록 사무, 입학 사무 등 기타 잡무로 인해 학습에 전념하기 좋은 계절을 낭비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그래서 3월 1일을 학기초로 함으로써 졸업식과 입학식을 함께할 수 있고, 또한 입학 수속 사무도 끝내서 4월부터는 정상적인 강의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학교가 3월 1일에 학년을 시작하고 입학식도 맞춰 한다면 중등학교의 학사일정도 함께 변경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3월 학기제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1956년 6월 27일 ‘재정법’이 ‘국가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에 시작해서 동년 12월 31일에 종료한다.’로 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3월 학기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은 1961년 3월, 장면 내각 때였습니다. 문교부는 그동안 실시되어 온 4월 학기제가 비능률적이고 비효과적이었다며 각 학교의 제1학기를 3월 1일부터 8월31일까지, 제2학기를 9월 1일부터 익년 2월 말일까지 하는 것으로 개정안을 내놓았고, 학기말 시험을 방학 직전에 실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장면내각에서 실시하려던 학기 변경 법률안이 군사정부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군사혁명정부가 교육의 질적향상을 기하기 위하여 수업기간을 1개월간 연장한 것을 환영하는 동시에 이러한 신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조선일보』1961년 8월 13일, 「학기와 입시제도의 개혁을 보고」
3월의 새 학기제가 실시되면 학기도중의 방학을 피하게 되어 학습이 중단되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고, 엄동기의 연료 절약과 학생 보건에 도움을 주며, 방학 동안은 새 학기 시험 준비를 안 해도 되는 이점이 있었는데요. 이런 이점에 따라 학기제는 변경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1961년 12월 30일부터 겨울방학을 시작해서 1962년 1월 26일 개학했고, 초등학교는 2월 1일에 개학해서 한 달 정도 후에 새 학년으로 진급했습니다. 이렇게 1962년부터 시작된 3월 학기제는 여러 논란과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20년만 3월만 생각해보더라도 별안간 전세계로 퍼진 낯선 전염병과 새롭게 도입하게 된 비대면의 체재에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시간이 걸렸는데요. 그 무엇보다 불안했던건 당장 코앞에 닥친 개학과 각자의 1년 계획이 뒤죽박죽 섞여서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학생들도 우리와 비슷한 기분이었을까요? 9월에 학교를 가는 사람, 4월에 학교를 가는 사람,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된 사람, 교과서가 꼬여버린 사람 등 어지러웠던 나라 상황만큼 학생들도 혼란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싫기만 했던 9월의 2학기 개학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고 하니 괜스레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새 학기를 힘차게 보내시길 응원합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민경
참고자료 |
- 김상훈 ( Kim¸ Sang-hoon ). 2020. 해방 후 학기제 변천 과정 검토. 한국교육사학, 42(4) : 35-62
- KBS 뉴스, 코로나19 재확산…대학가 2학기 ‘비대면 수업’ 연장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