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휴일이 다가 아닌 10월 3일 개천절
올해부터는 대체휴일제 인정으로 이전보다 쉬는 날이 가득해졌습니다. 이번 달에는 10월 3일 개천절의 대체공휴일 덕분에 월요병을 물리치게 될 텐데요. 이렇게 달력에 빨간 공휴일이 찾아올 때마다 쉴 수 있다는 것에만 급급해서 무슨 날인지 잊고 계신 적은 없나요? 開天(개천),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라고들 얘기합니다. 도대체 하늘이 열렸다는 게 무슨 뜻이길래 국경일까지 지정이 된 걸까요? 제대로 알아보기 전 노래 하나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 전주만 들어도 자동반사로 줄줄 읊게 되는 노래가 있었죠. 다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노래의 첫 가사입니다. 사실 괜히 첫 가사에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해 볼 개천절이 가사에 등장하는 내용과 같습니다. 바로 단군이 이 땅에 터를 잡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를 세운 날인 셈이죠. 우리 조상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의 날을 어떻게 알고 국경일로 지정하게 된 걸까요? 그건 우리나라가 치열한 독립운동을 반복하고 광복을 맞이하던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사실 10월 3일이라는 날짜의 근거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제사 시기로 언급되는 봄가을은 3월 15일인 어천절(단군이 승천한 날)과 10월 3일로 추정됩니다. 제사를 지내던 기록 중에서도 단군 교단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백두산에서 활동하던 백봉 중심의 단군 교단은 3월 15일과 10월 3일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요. 단군교 포명서에서는 단군교의 역사와 의의를 언급하면서 ‘단군교가 활성화되어야 민족의 번영이 가능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단군교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로 바뀌게 됩니다. 바로 나철의 ‘대종교’입니다. 나철은 백봉 측으로부터 단군교 보급을 권유받았으며 1909년부터 본격적인 종교활동을 시작하였고, 다음 해에 대종교로 교명을 바꿔 활동하게 되었죠.
대종교는 단군민족주의 인식과 민간종교사상을 결합한 교리를 가지고 시작하였는데, 창립 후 교단의 의례를 정하면서부터 ‘개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종교에서는 단군의 강세일(단군이 강림한 날)과 개국일이 모두 10월 3일이므로, 둘을 개천절이라는 이름으로 합칭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개천절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대종교는 음력을 고수하였다는 것, 그리고 건국보다는 단군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입니다.
이후 개천절은 1919년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부 주최의 경축행사를 개최하면서 위상이 높여지고, 1949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정식으로 국경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임시정부가 개천절에 정부 차원의 기념식을 진행한 것은 개천절이 정식 국경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의와 비중 있는 기념일임을 민중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개천절 기념행사는 더욱 보급되었고, 특정 종교를 넘어서 민족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남선, 안재홍, 정인보, 조소앙 등은 개천절에 관련한 논설을 자주 발표하며 단군 건국의 역사를 연구하고 개천절이 가지는 민족적 의의를 강조하여 계몽하였습니다. 특히 고대의 제천행사 풍습이나 민간의 추수감사 풍습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우리 민족의 생활과 문화 탄생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개천절을 일제는 그냥 두었을 리가 없었겠죠? 개천절은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시키기 때문에 탄압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국내에서는 행사 개최가 불가능해졌지만 해외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민족의 제전으로 인식되어 행사가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광복을 맞이한 후의 개천절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민족의식의 통일과 결속을 뜻하는 날로 부활하게 됩니다. 홍익인간이 교육 이념으로 제정되고 각종 언론을 통해 단기연호가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46년의 개천절 기념행사는 임정요인과 해외 독립운동 세력, 대종교단 등이 귀국하며 더욱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개천절은 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 국회를 통해 ‘국가에 경사로운 날’ 4일 중 하나로 지정됨으로써 정식으로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지정 날짜에 관해서 양력과 음력 중 어떤 것으로 지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상징적인 의의를 보존하고 날짜는 보편화된 양력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채택되어 현재의 양력 10월 3일이 개천절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매년 개천절이 되면 길거리와 관공서마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까지만 해도 개천절이라는 날이 너무나 이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다른 국경일보다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민족에 대한 열정과 당시의 굳은 의지가 지금의 개천절을 만들게 되었고, 특정 종교집단의 것만도 아니었으며, 종교를 초월한 참여가 있었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여러분들도 그저 달달 노래로만 외웠던 개천절이 아닌, 진정한 개천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공휴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민경
참고자료 |
정영훈 (2010). 개천절, 그 만들어진 전통의 유래와 추이 그리고 배경. 단군학연구(23), 401-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