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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Oct 14. 2021

골프고수도 역사를 모르면 골프초보!

근대골프의 역사

여러분은 주로 어떤 예능을 시청하시나요? 채널들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예능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은 골프예능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요. 유튜브부터 각종 방송사까지 적극적으로 골프예능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는 대중적이진 않았죠. 하지만 최근 예능과 SNS만 보더라도 젊은 연령층까지도 골프를 즐겨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골프라는 스포츠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오늘은 우리나라에 골프가 시작되었던 근대의 골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리머니클럽, ©JTBC | 편먹고 072, ©SBS


19세기 말의 조선에는 낯선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교육 및 의료사업을 통해 선교활동을 하려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에서 온 외국인 선교사들과 외교관, 사업가들이 들어왔습니다. 또한 개항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해왔죠. 이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즐기던 생활들을 조선에서도 향유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새로운 문화를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골프도 이러한 배경에서 조선에 보급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효창원 골프장, ©대한골프협회


한국 골프의 시작은 조선 철도국이 만주철도주식회사로 이관되던 시기입니다. 철도국 직영이었던 조선호텔이 여행객 서비스와 외국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호텔 부속 골프코스를 건설할 것을 구상하였으며, 철도국 관리하에 계획이 추진되었죠. 그렇게 효창원 골프코스가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외국인이 주로 이용해 대중적인 골프장이 되지 못하고 최초의 골프장이라는 이름만 남게 된 것이 아쉬운 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효창원 골프코스는 공원으로 유입되었고, 철도국과 호텔로부터 골프코스는 완전히 독립해 건설되어 청량리로 옮겨가게 됩니다. 1924년에 이후로 생겨나게 된 골프코스는 설계나 자금 투자 방식이 달라지며 경성 골프 구락부가 설립되었는데요. 이후 전국적으로 대구, 평양, 군자리, 원산, 부산 등으로 개장하게 됩니다.


영친왕이 군자리 코스에서 가족·캐디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중앙일보


이 과정에서 영친왕이 보였던 골프에 대한 관심에 주목해 볼 만합니다. 영친왕은 일본 황족의 영향으로 1924년 골프를 처음 배우게 되었고, 1925년에는 일본 황태자가 개최하는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의 골프활동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1927년에는 1년간의 유럽여행을 떠나며 싱가포르, 파리, 스위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골프 경기는 물론 골프장 시찰, 골프 레슨, 골프공 제조 공장들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영친왕과 유럽 여행단, ©시노다의 일기 |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 골프장에서의 영친왕, ©대한골프협회


또한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의 명문 골프클럽들을 방문하여 골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왔습니다. 이러한 영친왕은 유럽에서 돌아온 후에 경성 군자리 골프장 부지와 건설자금 20,000엔과 3년 동안의 운영비를 매년 5,000엔씩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여러 외부적 요인 등으로 인해 특별한 골프활동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영친왕의 골프사랑이 우리나라에 골프가 자리잡는 데 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자리 골프코스, ©golfdigest


골프가 자리잡혀가나 했으나,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억센 바람들을 골프도 피해 갈 순 없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골프코스는 농경지로 변화하게 되었죠. 광복 후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군자리 골프코스가 복구되었으나, 복구 1년 만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코스는 또다시 황폐화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국제 규격으로 재복구 되었는데요. 이후 재정비된 군자리 골프코스를 운영하기 위해 서울 컨트리 구락부를 창설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부산에도 컨트리 구락부가 생겼으며, 아마추어와 프로 골프 선수권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자리 골프코스가 자리 잡은 것은 잠시였습니다. 도시 공원 수요가 늘어나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군자리 골프코스를 폐쇄하고 어린이 대공원을 짓게 됩니다. 한국골프가 활성화되었고 해외교류의 발판을 마련했던 군자리 코스는 그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컨트리 군자리 코스는 한국골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골프계에서는 월드컵 골프 경기 참가를 위해 국내 골프 대표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65년에 한국 골프 협회가 창립되면서 침체되어 있던 골프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국제 골프 연맹 아시아 골프 연맹 등과 교류를 추진해나가며 각종 국제 경기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이 흐름을 타고 7-80년대에는 골프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대중화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글·기획 | 한걸음기자단 8기 정민경

참고자료 |

- 중앙일보

- 조상우. "영친왕의 골프활동에 관한 연구." 한국응용과학기술학회지 37.4 (2020): 986-995.

- 신용철 ( Yong Cheol Shin ). "골프 역사와 골프장 입지에 관한 연구." 한국사진지리학회지 20.4 (20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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