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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Oct 26. 2021

시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와?

한국 배달 음식의 역사


2021년 기준 한국의 배달 시장은 매우 주목할만한 경쟁 구도와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호황을 맞고 있을 뿐 아니라 경쟁 업체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배달 시장이 커지면서 주문할 수 있는 음식도 예전에 비해서 매우 다양해졌는데요, 심지어는 이태원의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도 배달 대행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겐 아무래도 치킨이 최고의 배달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벌써 입에 군침이 고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한국의 배달 역사를 같이 볼까 합니다.


1906년 일간신문 <만세보>에 게재된 최초의 배달음식 광고 | 조선중앙일보, 1933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구체적으로 찾기는 힘들었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황윤석의 일기인 ‘이재난고’에 냉면 배달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1768년 7월에 해당 일기에는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라는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냉면은 궁중에서 먹던 고급요리였다고 해요. 힘든 과거시험을 마치고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차원에서 비싼 요리를 시켜 먹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한매일신보(1910), 명월관연회 | 명월관 전경
명월관 본점 현관 | 조선신문(1929년 1월 5일), 명월관 광고


1906년 일간신문 <만세보>에는 최초의 음식배달 광고가 실렸습니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 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시면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홍보 내용이 기재되어있었다고 하네요. 명월관은 최초의 조선음식 전문점으로 각종 행사에 필요한 만큼 음식을 주문받아 그릇에 담은 교자상까지 배달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도시락 배달, 또는 한정식 출장 뷔페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참 고마운 감정이 드는 게, 당시엔 일제강점기 초기라서 무력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시대였습니다. 언론의 통제와 민족 교육 금지 등 상당히 악랄한 통치를 하던 시기였죠. 민족의 얼과 문화, 역사가 담긴 한국 음식이 그래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조선의 이름을 달고 팔렸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동죽지 | 마켓컬리에서 배달하는 효종갱


배달시켜 먹던 음식 중에 냉면보다 훨씬 인기를 끌던 게 있었으니, 바로 해장국입니다. 조선후기 문헌인 해동죽지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남한산성 부근의 맛집에서 해장국을 끓여 두툼한 솜에 싸서 한양으로 보내면 새벽녘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뜨뜻한 온기가 유지되어 있어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양반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하네요. 효종갱은 새벽 효(曉), 쇠북 종(鐘), 국 갱(羹) 즉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국밥입니다. 다만 전복과 소갈비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일반 국밥하고는 좀 다르긴 하지만요. 역시 든든~한 국밥이 술 마신 다음 날에 최고라는 건 선조들의 지혜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화춘 건물 | 동아일보 경성 설렁탕 가격 협상
검찰청에서 야식으로 시켜 먹은 설렁탕을 수거하는 종업원들


1900년대에 들어서며 조선총독부의 주관하에 군수보급을 목적으로 소고기가 대량으로 생산되며 버리는 부위도 많아졌습니다. 소뼈와 각종 부산물을 이용해 끓여내는 설렁탕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것이죠. 뿌연 국물에 살점이 가득하지도 않고, 싸구려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은 처음엔 멸시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먹어보셔서 알잖아요. 맛있는 걸 어떡해요. 1930년대 부유층과 모던걸, 모던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체면치레를 하러, 혹은 밥을 하기 귀찮아서 많이 배달시켰다고 합니다.


혹시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기억하시나요? 김 첨지는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 갔으나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죠. 설렁탕을 ‘사서’ 갔다는 건, take-out이 가능했다는 소리이고 그 말은 배달 역시 많이 이루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난한 아내가 원했던 설렁탕은 서민들의 음식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중적으로 많이 즐겨 찾는 음식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배달의 상징, 대림 씨티에이스 | 후라이드 치킨


설렁탕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인기 배달음식이었다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강력한 음식이 새로 등장하죠. 바로 짜장면입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을 시작으로, 전국에 엄청난 존재감을 각인시켰죠.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70년대와 80년대에는 졸업식, 소개팅, 상견례 자리에서나 짜장면을 먹었을 정도로 고급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죠. 소개팅 나가서 짜장면을 먹자고 하면...


이후 생활 수준이 올라가며 수요가 늘고, 아파트 단지, 상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중국집 연락처가 붙으면서 배달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전국을 뒤덮게 됩니다. 또한 2010년대에 들어서며 배달 어플이 등장하게 되고 기존의 후라이드/양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맛을 시도하는 치킨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하죠. 2021년에 들어서며 배달은 단순 음식 뿐 아니라 식자재까지 1시간 안에 해결해주는 퀵커머스 사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언제든지 사업에 뛰어들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배달 음식에 대한 역사를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배달은 오토바이타고 하는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유서가 깊죠? 조선 후기에 냉면을 벌써 배달을 시켰다니, 역시 우리는 배달의 민족인가 봅니다. 이번 기사를 작성하며 계속 음식 사진을 보니 배가 너무 고파져서 막 먹었습니다. 재미있게 글을 읽으시며 여러분들 역시 식욕이 올라 다음 끼니에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중이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훈기

참고자료 및 출처 |

신동아일보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수원광교박물관

마켓컬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BS 역사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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