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현성당 탐방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걸음 기자단 정훈기입니다. 원래 제 글은 항상 눈길을 끄는 방식으로 시작을 하지만, 이번 기사는 조금 심심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왜냐면 종교와 관련된 건축물을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이에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저는 가장 관심 있게 본 분야가 바로 종교였습니다. 종교 때문에 정말 많은 이들이 죽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탄생하며, 수많은 문화가 생겼거든요. 불교든 이슬람교든 종교가 남긴 건축물은 정말 아름다워요.
오늘은 약현성당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역사적인 의미와 건축사적 가치를 가볍게 보려고 해요. 우선 성당이니 당연히 천주교와 관련이 되어있겠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조선은 유교 사회였어요. 후기에 접어들며 더욱 폐쇄적이게 되었고, 특히 천주교를 많이 박해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866년 병인박해로 다수의 천주교인들이 사형에 처해진 것은 병인양요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죠.
약현성당은 1891년 박해가 끝나고 난 뒤 서소문 순교자 성지가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만 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아마 고딕 양식의 서양 건축물을 생각하면 대부분 명동성당을 생각할 겁니다. 그 명동성당 건축의 모태가 된 곳이 바로 중림동 약현성당이라는 사실. 저도 취재를 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이전까지 서양식 건축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성당을 설계했던 프랑스인 신부, 외젠 코스트 신부는 명동성당을 짓기 전에 약현성당을 먼저 시험 삼아 지었다고 해요. 그래서 사적 252호에 등재가 되고,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이 되었답니다. 최초라서 중요한 것도 있지만, 서양식 건축물의 시작이라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이전까지 서양 건축과 관련된 경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사를 하는 인부들 입장에서도 낯선 벽돌, 낯선 양식은 매우 까다로웠겠죠. 그래서 애초에 명동성당을 염두에 두고 실현시키고 싶었던 것을 약현성당으로 시도한 것입니다.
사방에 열려있기보다는 언덕에 위치해서 그런지 외부와 어느 정도 공간이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도심 한가운데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운 성당이 있어서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오히려 성당보다는 수도원 느낌이 좀 더 강하다고 할까요. 실제로 성당 뒤편에는 수녀원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업무가 중단되는 월요일에 방문해서 아쉽게도 입장은 못했습니다.
순교자들이 겪은 만큼 고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오르막길은 감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약현성당은 한국 천주교에 있어서 매우 가치 있는 건물이니까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으시거나, 서소문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방문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개항기 시절 종교 박해와 그것을 이겨내고 은은하게 중림동에 위치해 있는 약현성당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게요.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훈기
<참고자료 및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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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홈페이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