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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역사박물관 Jan 06. 2022

파란 하늘 위를 훨훨 날아가겠죠

한국 관광의 역사

인천 제2공항


정말 지긋지긋하다 못해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착용. 어느새 우리 모두는 코로나에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 속에서도 끝끝내 적응이 안되고 여전히 우릴 답답하게 만드는 분야가 몇 개 있죠. 공연/예술과 여행 산업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여행 쪽은 정말 풍비박산이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에요. 공간이동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디지털 산업과 메타버스 같은 것들이 발전해도 해외 여행을 가서 관광지를 도는 것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조금씩 여행을 하는 모습이 유튜브 등의 커뮤니티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써, 오늘은 한국 관광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조선 통신사
당염립본왕회도 | 조선 진신 내지 시찰단 모집 광고


요즘에도 마찬가지지만, 관광지에 가서 좋은 추억을 쌓고 여행하다 오는 것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죠. 옛날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 제한이 있었답니다. 주로 상류층의 교양과 유학, 종교적인 순례, 무역 등과 같은 정해진 이유가 있어야 중간중간 곁들여 여행도 가능했어요. 개인적인 목적으로 여가를 보내러 가는 경우는 최상위 계층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시대에도 관련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엔 6세기 양나라 원제에게 조공을 온 24개국의 사신들의 모습을 담은 당염립본왕회도에서 고구려, 신라, 백제 사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당연히 조공만 바치고 돌아가진 않았겠죠? 전시가 아닌 이상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식사를 하거나, 근처 명물을 보고 갔을테니 그게 사실상 여행이었죠.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임진왜란 이후에 출범한 조선 통신사도 어찌 보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낭여행 가는 이유가 뭔가요? 외국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교류하러 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관광은 조금 의미가 변질되었습니다.


경성일보에서 일본 공진회를 관람할 수 있도록 조선 현직 관리들을 대상으로 여행을 기획했습니다. 이것을 내지 시찰단(內地視察團)이라 하였고 193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말은 일본 관광이지만 친일 세력을 꾸준히 육성하기 위한 일환이었다고 해요.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는 정책적 차원에서 식민지 동화 정책을 위해 관광이 쓰였다는 가슴 아픈 사실이 있습니다.


관광사업진흥법안(1961) | 국제관광공사법(안)(1962)
한국관광공사 공식 로고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정부는 관광을 통해 경제발전을 꾀하고자 관광사업진흥법안을 추진, 그 이듬해에 국제관광공사법을 제정합니다. 지금의 한국관광공사의 전신이었던 국제관광공사는 관광선전, 관광객 제반 편의제공, 외국관광객 유치와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교육과 양성을 담당했습니다.


관광기본법(1975) | 관광진흥법시행령개정안(1987)
94 한국방문의 해 기념 88 디럭스 마일드 담배 포갑지


70년대와 80년대 들어서며 경제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국민의식이 높아졌고, 관광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들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을 오게 되는 경우가 점차 많아졌고, 정부는 관광사업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며 경제활성화를 추진합니다. 특히 80년대는 대한민국 관광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시기입니다. 경제 호황과 맞물리면서 야간통행금지해제, 88올림픽, 국민해외여행의 자유화 등으로 관광산업이 날아올랐죠. 이 시기 대학생들 중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훌짜ᅠ각 떠나는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다고 해요.


인천공항 제2터미널 내부
하나투어 로고 | 모두투어 로고 | 숙박업체 여기어때


너무 잦은 여행 때문이었을까요? 여행산업은 90년대 들어 적자를 기록하며 침체기를 맞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97년도엔 IMF까지 닥치게 됩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여행산업은 도약하기 시작했어요. 국내 여러 관광업체들의 성장과 더불어 인천공항은 2018년 들어서며 제2터미널을 증축했습니다. 불과 3년만에 영국 스카이트랙스가 주관한 2020 월드 에어포트 어워즈에서 최고 터미널상과 최고 환승공항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2018년 7월 즈음에 이용을 해봤는데, 공항에서 먹고 자고 살림을 차리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조금씩 항공길이 열리는 듯 합니다. 다가오는 2022년에는 여행산업이 부활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지금 기사를 쓰는 시점에서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나타났다고 하네요. 모쪼록 별 탈 없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거북이의 노래 중 비행기라는 명곡이 있죠. 수많은 사람들 속을 지나쳐 마지막 게이트 앞에 서며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하는 그런 기분. 정말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 기사를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글·기획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한걸음기자단 8기 정훈기

참고자료 및 출처 |

- 우리역사넷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국가기록원

- 인천공항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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