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모두 이번 주 금요일이 마감이다. 청소년 단편소설 원고 2교를 조금 전에 마쳤다. 자고 일어나 내일 점검하고 출판사로 보낼 것이다. 그러나 3교가 남았으니 내용을 다 아는 소설을 며칠 뒤 한 번 더 읽어야 한다.
내일은 '땡땡'연구원의 연구보고서를 작업할 예정이다. 띄어쓰기 통일, 용어 확인, 맞춤법 등은 한 번 점검해 두었다. 그래도 막상 다시 보면 손댈 곳이 많을 테지. 학술적인 내용의 단행본은 몇 권 해봤지만, 연구보고서는 사실 경험이 많지 않다.
기획사와 잡지사 경험이 있어 잡다하게 다양한 일을 했지만, 아직 안 해본 분야가 많다. 예를 들어 혹시나 내가 교과서, 문제집 등의 일을 맡게 된다면 무서워 벌벌 떨 것 같다. 하지만 교과서를 작업했던 선배 교정 교열자에게 들으니 교과서가 더 수월한 면도 있다고 했다. 애매한 부분이 적고 세부 규칙이 잘 정해져 있다고.
몇 년에 걸쳐 작업한 걸 세어보니 이번이 다섯 번째 연구보고서였다. 이름도 몰랐던 곳인데 알고 보면 큰 기관인 연구원이 의외로 몇 곳 있다. 사람들 모르는 새에 이렇게 은밀하게 다양한 연구들을 하고 있다니! (큭)
연구보고서는 일단 한 번 읽는 게 고역이다. 골치가 아프다. 모르던 세계의 언어를 좀 배워야 한달까. 하지만 몇 번 작업해 보니 나름의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새로 연결된 거래처에서 주는 두 번째 일이라 감사하다. 다음 작업도 예약이 돼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프리랜서의 애환).
교정 교열자가 보는 연구보고서 일의 장점은 이렇다. 나는 연구보고서 작업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이 일을 질리도록 해본 사람과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나, 단어를 어떻게 바꿀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단어의 일관된 사용은 연구보고서의 미덕(?)이다. 같은 내용이면 같은 형태의 문장으로 쓰이는 게 기본인 것이다. 전문 용어뿐 아니라 부사나 서술어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읽을 땐 답답하지만, 별 요청이 없다면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의미상 잘못 사용된 사례라면 바로잡는다.
둘, 단가 계산이 깔끔하다.
원고지 매수로 작업비를 계산하는 출판사와 달리 연구원에서는 완성된 책의 페이지로 작업비를 계산한다. 여기에는 표지나 장표제면은 물론, 판권면, 빈 페이지도 포함된다. 공미포 한 글자당 얼마를 받고 싶냐 따지는 웹소설 쪽에서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다.
물론 출판사에서도 책 종류에 따라 페이지로 계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용서, 학습서의 경우가 그런데, 나는 해본 적이 없다. 작업해 본 편집자에게 그렇다고 들었을 뿐. 보통 소설, 에세이, 인문서 등 단행본 책은 원고지 분량으로 계산한다. 단행본의 교정교열 단가는 출판사마다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책마다 다를 수도 있다. 반면, 연구원은 보고서의 주제나 난이도는 작업비에 반영하지 않는다.
셋, 주로 2 교만 진행한다.
저자 교정을 여러 번 거치고, 내부 검토까지 마친 원고라서 한 번 보고, 수정자를 확인하여 한 번 더 읽어보면 끝이다. 보통 원고는 세 번씩 보는데 연구보고서는 두 번만 보니까 상대적으로 수월한 기분이다. 그러나 연구보고서는 읽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기분만 그런 걸 수도 있다.
넷, 치명적 오타나 오류를 찾았을 때 왠지 더 기쁘다.
이건 다른 책을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왠지 더 그렇다. 연구보고서의 무게감 때문일까?
이번 보고서에서는 저자의 손글씨 교정을 파일로 옮기면서 잘못 적은 듯한 오타를 찾았다.
내용상 '유통 채널'이 맞는데, '유흥 채널'이라고 적혀 있었다. '교란'시키다가 '교관'시키다로 잘못 적히기도 했다. 맞춤법 검사기는 한겨레신문사의 '한겨레'를 '한겨례'라고 잘못 표기한 걸 찾아냈다.
적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장점까지만 적어 두는 걸로. 아마도 내일 하루 종일 작업하고 나면 단점이 우르르 떠오르겠지. 그건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