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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낮 Apr 07. 2024

동네 도서관의 힘

초등 문장력 수업 강의 후기

엘리베이터 타는 곳 옆 소식란에 깨알 같이 안내돼 있는데도 어떻게들 알고 빠르게 신청을 했더라.

동네 도서관에서 숨은 고수를 찾는다는 공지를 봤다. 도서관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거리는 편은 아닌데 어쩌다 보게 됐다.


그 무렵 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쓴 책을 교정 교열하고 있었다. 주제는 소설 쓰기, 문장력 수업 등이었다.


종일 앉아 있으니 요새는 걷기만 해도 숨이 차는 듯하다.

 '그래, 나가 보자. 방콕 편집자에게 대외활동이 필요해.'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나가 강의하면 운동도 될 것이다. 세상에 그게 무슨 운동이냐 하겠지만, 일이 많을 땐(흐흠, 물론 핑계) 며칠 동안 현관문 밖에도 안 나간다.


한때 도서관에서 강의 하는 게 로망이기도 했다.

아이들 어릴 때(주로 유치원 입학 전), 도서관에 다니며 유익한 강의를 많이 들었다. 그때 만난 선생님들 중에는 아직도 기억 나는 고마운 분들도 있다. 동화책도 전문적으로 읽어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수업들이었다. 두 분이 특히 기억 나는데, 표정이 풍부해 감정 표현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또 말투와 행동에서 착한 마음씨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모두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다. 다섯 살이 돼서야 유치원에 입학했다. 대신 한창 돌아다니기 좋아할 서너 살 무렵에는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아마도 그 덕분일 것이다. 둘 다 책을 꽤 좋아하는 아이로 자다. 주변 아이들은 늦어도 36개월쯤에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이건 어린이집에 안 가면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거의 무료에 가까웠던 도서관과 몇몇 기관의 수업 덕분에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무렵에는 쉽게 신청해 들을 수 있는 고마운 수업이 주변에 많았다.  엄마의 발품이 필요하긴 하지만....

꽃쟁반. 꽃 피는 봄에 글 쓰기 수업을 들으러 와 줘서 고마웠다. 그런데 사실 꽃놀이 안 가고 도서관만 나서도 천지가 꽃이다. 우리 동네는 가로수가 벚나무니까!

오늘,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생각보다 모범생이었다. 글쓰기 수업이란 게 재미없을 게 뻔한데도, 참고 잘 들어주었다. 60분간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건 예상보다도 더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나도 그런데, 듣는 애들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학생들은 의외로 수업에 잘 집중했다. 내가 질문하면 답을 맞히려고 궁리에 궁리를 했고, 설명이 분명 지루했을 텐데 잘 들으려고 애썼다. 아, 남은 세 번의 수업은 좀 재밌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수업이 끝나고 세 명의 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그중 한 학생이 자기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편집자라고 하시니까, 제 글 좀 봐주시겠어요? 제가 꿈이 많은데 그중에 작가도 있거든요. 판다지 소설을 쓰고 있는데...."

사실 제일 싫어하는 게 ppt 발표다. 회사 다닐 때도 내가 작성한 ppt에 할 말을 적어드릴 테니 대표님이 대신 발표해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피할 수는 없었지만.

학생의 핸드폰에는 빼곡하게 글이 적혀 있었다. '피아노 악마'에 대한 내용이었다. 6학년이 벌써 자기 작품을 쓴다니 놀라웠다!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작가가 꿈이라고 말하며 작품을 내밀 수 있는 그 자신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작품을 다 읽을 시간은 안 돼서 직접 화법이 연달아 나올 때는 누가 한 말인지 분명히 밝혀주는 게 좋다는 것만 가볍게 이야기해 줬다.

"아, 집에 가서 바로 편집해야겠어요~."

이렇게 귀여운 녀석을 봤나. 내가 "너 정말 멋지다"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학생도 덩달아 글쓰기는 싫어하지만, 이야기 쓰는 좋아한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너도 참 멋지다고 말해주었다. 두 학생에게 다음 주에 책을 한 권씩 주기로 했다. 마침 출판사에서 받은 글쓰기 책이 집에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 서있던 한 학생은 그런 둘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뒤 도서관 직원이 내게 말했다.

"제가 도서관 직원이어도 우리 아들은 책 읽는 거, 글 쓰는 거 다 싫어해요. 그런데 저 아이들 보니까 대단하네요. 쟤들은 다른 도서관 수업에도 자주 참여하는 애들인데, 볼 때마다 참 수준이 다르구나 싶어요."

음.... 다음 수업은 한 단계 수준 높은 내용으로, 재미있게 준비해야겠다.


한 시간 동안 서서 말하기. 예상보다 더 힘들고 체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하루 한 시간도 이런데, 강사, 교사, 교수 들은 이걸 일로 하다니 존경스럽다. 도서관에서 나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런 말을 했더니, 이제라도 알아주니 고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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