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낮 Apr 03. 2024

웹소설 교정 작업료

공미포 1 자당 얼마?

편집자로서 입지를 넓히기 위해 전에 해본 적 없는 웹소설 장르에 지원서를 냈다.

웹소설은 상대적으로 교정교열 작업에 비중을 두지 않지만, 그만큼 완결성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저가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평소 웹소설을 안 읽는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시켜주는 곳이 있다면 해볼 작정이었다.


한 군데서 연락이 왔다. 온라인 교정교열 테스트를 보자고 했다.

테스트지를 작성해서 보냈다.

사실 완성한 뒤 메일 보낼 때 고민이 많았다. 그곳의 작업료 산정 방식이 예상보다 더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보내온 안내 메일에는 아래 질문에 답해 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1. 교열을 포함하여 공미포 1 자당 어느 정도의 가격을 고려하고 계신가요?

1-1) 1 교만 진행 시

1-2) 2교까지 함께 진행할 시

---------------------


공미포? 혹시 공백 미포함? 바로 짜증이 밀려왔지만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검색을 했다. 웹소설계에서 말하는 공미포는 역시 공백 미포함이 맞았다. 원고량을 확 줄여서 작업비를 주겠다는 말이었다. 한글 프로그램에서 원고지 분량을 체크하면 공백을 모두 빼고 글자 수만 집계된 숫자가 나온다.

검색해 보니 이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여럿 나왔다. 그런 회사는 제발 거르라는 내용이었다. 공백을 뺀다면 교정교열할 때 띄어쓰기는 안 보는 것이냐고 성토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계산법이 웹소설계에서는 흔한 일인 듯했다.


그리고, 1 자당? 하하하. 이건 웃음밖에 안 나온다. 한 글자당 얼마를 받고 싶냐는 말인데, 기가 차다. 하지만 검색해 보니 이 역시 이 동네의 일반화된 룰이었다. 웹소설 작가들이 상식 이하의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한다는 내용을 시사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미 선정된 작품에 대한 교정교열비까지 이렇게 할지는 몰랐다. 검색해 보니 1 자당 1원에서 4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우스운 금액인데 더 신기한 건 4배까지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정 테스트에 작업비를 적어내라는 안내 메일은 가장 낮은 금액을 적은 지원자를 뽑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검색하며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웹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이 작업비가 너무 짜다는 걸 알지만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무료로 웹소설을 읽으면서 돈도 번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혹자는 그 작업으로 웹소설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명작을 필사하는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답변을 달아 놓은 걸 봤다. 그런 마음이라면 그 시간에 차라리 자기 작품을 쓰라고. 일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어떻든 이 상황은 일의 개념이 아직 잡히지 않은 청년들을 약삭빠른 어른들이 등쳐 먹는(흠... 뭘로 순화할 수 있을까. 뭐, 사전에도 있는 말이다. 등-치다「동사」 옳지 못한 방법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다.) 모습이라고 판단된다.   


아주 가끔 작은 기획사나 출판사에서도 1 교만 진행할 때, 얼마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혹시 경험이 적은 외주 편집자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내게 묻는다면, 거르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외주 초기에 나 역시 이런 일을 겪었다. 의아한 마음에 선배 편집자에게 물었더니 거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의 말을 듣지 않고 작업을 하고 말았다. (참, 1교를 진행하는데 3교 진행비 정도를 지불하겠다고 하면 해도 된다. 3교 진행을 권하고, 이 마저 거절하면 한 번 보기로 했어도 두세 번 체크해서 줘야 할 것이다. 이 경우는 교정교열을 전혀 모르는 대표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드문 일이다.)


계약대로 1 교만 봐서 보냈더니 완성도가 떨어진다며 그 출판사 대표는 성을 냈다. 1 교만 봤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심지어 초교 교정도 안 된 걸 급하게 교정지에 얹어 주는 바람에 정말 피투성이 되게 보느라 애썼는데 말이다. 다시 선배에게 하소연했더니, 그럴 줄 알았단다. 이런 대표는 진짜 원고 상태가 1교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일을 주는 게 아니란다. 1교 가격으로 교정교열이라는 고민거리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


웹소설 회사에서 받은 테스트지 분량은 빽빽하지 않은 A4 한 장이었다. 어느 정도로 교정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서 해봤다. 불행히도 이때 내가 한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료하고 작업료 항목에 답을 달자니 고민이 됐다. 어차피 교정은 봤으니 보내 보자. 악덕 회사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정중하게 제안해 보자.

  

제시하신 방법으로 견적을 내본 적이 없어 작업료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략적으로 편 당, 혹은 권 당 어느 정도인지 회사 내규대로 편안히 제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불합격 통보 메일을 받았다. 그들도 나를 걸렀다. 하하.


안 하던 장르에 대한 도전은 계속해 볼 생각이다. 어제는 학습만화 편집자를 찾는 출판사와 통화했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절반 정도는 만화가 실리는 잡지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경력 사항을 정리해서 보내달라기에 보냈다. 이건 할 수 있고, 저건 할 줄 모른다고 적었다. 사실 내가 맡기에 적합한 일은 아니지만 잘할 수 있는 일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양하게 계속 도전 중이다. 보통 일이 없을 땐 이런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 보내다 보면 기존 거래처 중에 한 곳에서 일이 온다. (주는 일이나 잘하라....) 어제 짧은 보고서 일감이 새로 들어왔다. 얼른 해치워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17-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