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교열 작업만 하면 작가와 직접 소통하지 않는다. 그건 담당 편집자의 몫이다. 그래서 편집자에게 종종 이런 인사를 전해 듣는다.
작가의 서랍을 보니 여기까지 쓰고 만 글이 있다. 아 이날 이런 메일을 받았었지. 이걸 이렇게 쓰다 말았는데, 다음 날에는 바로 저자 컴플레인(?)이 들어와 17번 글은 다른 게 적혔다. 작가 글을 두고 타박하는 글로 채워졌다.
하루에 세 줄 쓰는 것도 쉽지 않아 밀리다 보니 글의 방향도 급격히 바뀌었던 것이다. 꾸준히 하는 일은 쉬운 게 없다. 매일 글을 발행하는 이웃 작가님들께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어서 쓰자면,
"꼼꼼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달랍니다."
나는 이 칭찬의 톤을 모른다. 작가의 글은 세 번씩 정독하지만 개인적으로 소통한 적이 없기 때문에 뉘앙스를 모른다. 주로 '꼼꼼'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내가 찾은 오류에 고마워 하나 보다 하고 짐작한다. 시간이나 장소를 잘못 쓴 것을 고치거나, 잘못 사용된 부사어를 찾아내 적당한 부사어로 대체하거나 하는 일들.
"세심하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작가님이 전해달라 하셨어요."
이런 피드백이 오면 문장을 확 뜯어고치지 않고 원래 문장을 최대한 살린 것을 고마워 하나 보다 하고 짐작한다.
그냥 고맙다는 말인 줄 알면 되지, 참 세세하게 따진다 싶겠지만, 주로 작업하는 중에 메일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단어의 뜻을 생각하며 읽곤 한다.
편집자, 교정교열자들끼리 만나면 서로 하소연하기도 한다.
"어휴~ 초교를 봤어야 내 마음을 알지. 진짜 첫 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쓰는 거야."
물론 내용보다는 문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정도야? 요새 누구 책 작업하고 있는데?"
"아니야.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고."
정말 친하면 작가 이름을 거론하기도 하겠지만 웬만해선 저자 이름이나 책 제목까지 들먹이며 흉보진 않는다. 나름의 예의랄까. 을이라서 한 번 더 참는 마음도 있겠지.
잘 쓴 문장은 편집자들에게 당연히 환영받는다. 읽을 때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성심껏 구석구석 단어를 살펴본다. 잘 쓴 글이다 싶으면 함부로 빨간 줄 넣지 않는다. 넣었다가도 불필요한 수정이 아닌가 점검하여 빼기도 한다.
아는 편집자가 번역서 교정교열한 경험을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번역자가 우리말 달인인지 문장도 문법도 단어도 손댈 곳이 없더란다. 교정교열 흔적을 남길 게 없어 난감했지만 작업 내내 감탄했다고.
글을 꼼꼼하고 세심하게 쓴 작가들은 교정자가 어떤 생각으로 글을 고쳤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교정자가 고친 부분을 아마도 모두 확인할 것이다.
어떤 작가들은(책을 여러 권 내서 작업 과정을 모두 알고 있더라도) 편집자가 중간에 주는 수정 파일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 중간 점검을 대충 한다. 그러고는 매끄럽게 잘 고쳐졌네요,라고 피드백을 준다. '어디가 바뀐 것인지 점검하지 않고 전체 분위기만 휙 본 건 아니겠지?' 하는 걱정이 들지만 그런 거냐고 묻기는 애매하다.
그러고는 진짜 확인만을 위한 단계인 조판 교정지에서 칼을 뽑아 든다. 진짜 책처럼 디자인이 돼있으니 그제야 실감이 난 것인지 아니다 싶은 것은 과감하게 수정한다. 단락 모양을 다 맞춰 놓았는데, 주석을 1000개씩 달거나 몇 문장, 몇 단락을 새로 써넣는다. 저자의 수정이니 당연히 반영된다. 자르고 넣으면 되니 못할 것도 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 글을 세 번이나 읽어서 꼼꼼히 작업한 교정교열자와 그 글자들을 하나씩 고쳐 넣은 디자이너의 수고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글은 대개 한 번 확인하고 책에 실린다. 이것이 작가들이 초고에 질릴 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17번 기록을 하며 화가 난 이유는
1. 조판 전에 준 원고를 저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대폭 수정된 원고였는데 말이다.
2. 고칠 여지가 있는 단계의 교정지였다. 상의하고 수정해서 책을 내면 된다. 교정교열자가 저자의 문장을 잘못 이해했다고(물론 나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 타박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걸 본 독자들은 이해할 것인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편집자는 1번 독자다.
3. 문체와 군더더기는 다르다. 말꼬리 늘이기, 문장 늘어지게 쓰기를 고유의 문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는 하루키의 신인 시절 이야기가 나와. 하루키가 "처음에는 잘 쓰지 못했다"라고 고백하지. 어느 날, 그는 편집자에게 자신의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말했어. 그러자 편집자는 "괜찮아요, 무라카미 씨. 다들 원고료 받아가면서 차차 좋아집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작가도 처음부터 잘 쓰지는 못했던 거야.
위 글은 얼마 전에 작업한 "사춘기를 위한 문장력 수업"에 실린 내용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능력 가운데 문장력은 타고난 작가의 천재성이 아니라 연습으로 얻어지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물론 대가의 글을 초보(경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볼 때) 편집자가 만지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대가의 글을 초보 편집자 '취향'대로 바꿔버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때는 초보 편집자가 대가의 글을 많이 만지면서 월급 받아 가면서 차차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독자 입장에서 문장을 손보려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자기 눈에 익숙한 대로 쓰겠다고 고집한다면 책을 몇 권을 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저자의 책은 편집자가 고민해서 세심하고 꼼꼼하게 고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