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pc교가 끝났다. 8월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세 달이 걸렸다. A4용지 640장, 200자 원고지로는 4900장이다. 보통 어른 소설 한 권은 원고지 700장 내외다. 앞으로 두 번 더 읽어야 하니 교정 작업은 몇 달 더 걸릴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데 6년이 걸렸다. 그 책을 번역가가 수개월 동안 우리말로 옮겼다. 번역가는 아직도 내 빨간 펜 수정을 확인하며 책 작업에 함께하고 있다
작가는 책 끝에 감사의 말을 남겼다. 집필에 도움을 준 동료는 물론, 6년간 자료를 찾아준 도서관 사서에게, 책을 편집해 준 다섯 명의 편집자에게, 일정 관리를 도와준 다른 직원과 아내,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대략 30명에게. (그들은 당연히 외국인이고, 나는 그 이름들의 외래어 표기법을 찾느라 몇 시간은 더 일해야 했다!)
독자들은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작가의 마음은 읽을 것이다. 책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썼는지 짐작할 것이다. 독자 대표인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심해야 이 정도 책을 쓰는구나'
감사는 이렇게 작가의 미덕으로 평가됐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그 이름을 다 확인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이 다 올라갈 때까지 봐야 영화를 다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토리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아울러야 영화의 진정한 완성인 셈이다. 그 역시 그 작품의 일부다.
때로는 책 작업에 별로 참여하지 않은 편집자가 책 판권에 실리기도 한다. 작은 출판사는 편집자의 경력 관리와 책의 모양새를 위해 출간하는 책에 모든 편집자 이름을 넣는다. 회의 정도는 같이 했겠지만 담당이라고 하긴 어려운 경우에도 이름이 올라갈 수 있다. 출간됐던 책의 중쇄를 찍으며 편집자가 바뀔 수도 있다. 이전 편집자가 퇴사했다면 회사에서는 그 이름을 빼고, 새 담당자 이름을 편집자 자리에 넣는다. (편집자의 뛰어난 기획이 주목받았고, 잘나갔던 책 중에 이런 경우가 있어 편집자들 사이에서만 조용한 논란이 있었다.)
교정교열자의 이름은 표기를 하는 곳이 있고, 안 하는 곳이 있다. 의미도 양면적이다. (수고에 대한 권리 혹은 수고할 의무에 대한 압박ㅎ) 편집자 중에는 이름이 실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름을 안 실어 주는 출판사와 실리길 원하는 편집자(교정교열자)가 만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언젠가(오래전이고 기억이 가물가물), 편집자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 저자가 출판사 쪽에 편집자 이름을 표지에 넣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작가 누구, 편집자 누구.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마도 이 편집자는 작가가 쓸 글의 방향을 잡아 주고, 집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해당 출판사는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어렵냐는 비판도 있었고, 그렇게 하면 그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은 어떡하냐는 반론도 있었다.
표지의 저자 옆자리는 그렇게 민감하다. (저자는 영화감독보다도 지분이 크다. 감독은 제작사 눈치를 보겠지만, 출판사는 저자 눈치를 본다. 완성물의 총량을 측정한다면 그중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저자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름을 돋보이게 하려면 다른 이름의 조명은 꺼야 한다. 어느 분야든 흔한 일이다. 그것은 몇몇의 빛나는 이름을 만드는 비결이지만, 밥 벌어 먹고살려고 억지로 한다는 체념과 무책임을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너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