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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by 대낮

스트레스는 몸을 굳게 한다.

머리도 굳게 한다.

개인사와 업무가 겹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신도 아프고 몸도 아프다.

엄마의 하루가 안 좋으면, 불행히도 아이의 하루 역시 안 좋다.

초등 아들 눈치가 보인다.

아들이 하자는 건 웬만하면 해주자고 생각한다.

방학인데 해주는 게 없으니 소소한 바람이라도 들어주자고.


얼마 전, 아들이랑 같이 오락하러 갔다(집 근처 문화공간에서 최근에 오락기 두 대를 들여놓았다).

무료 이용, 제한 시간은 1시간.

우리는 테트리스를 한 단계씩 깨 나갔다.

"엄마, 28단계부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래."

"그럼, 엄마가 오늘 깨줄게."

우리는 20단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정신없이 버튼을 누르는데 아들이 아는 동네 형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모, 작가예요?"

테트리스 블록의 모양을 바꿔서 내리고 줄을 없애면서 내가 대답했다.

"아니."

"그럼 뭐예요?

응? 나는 이 단계를 꼭 깨고 싶은데, 하필 지금 나더러 뭐냐고 묻는 것이다.

오락하러 왔지만 나는 사실 바쁜 몸이다.

이거 얼른 깨고 가서 밥도 차리고 교정지도 봐야 한다.

아무튼, 나는 뭘까.

"편집자."

"아 맞다. 그거랬다. 그럼 책 만드는 일 해요? 만든 책 있어요?"

아들과 나는 20단계를 깨고 21단계로 들어섰다. 아들이 대답했다.

"되게 많아. 집에 쌓여 있어."

아들은 밖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다니는 걸까. 궁금한 와중에 테트리스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모 이거 되게 잘한다. oo이랑 맨날 오락해요?"

말대답할 정신이 없는데, 듣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니. 나 가끔 해."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우리 엄마는 원래 테트리스 잘해."

25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직원이 다가왔다. 제한 시간이 끝났다고.

"아, 죄송합니다. 이거 이제 시작해서... 이것만 깨고 가도 될까요?"

나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직원은 웃으면서 허락해 줬다.

"네. 그러세요."

깼다! 25단계. 아, 시간만 더 있다면 더 깰 수 있는데.

아쉽지만 일어났다.

그래서, 다음에 또 가야 한다.


하필 좋아하는 게임이 꼭 정리정돈 게임인가 싶지만,

아들이랑 앉아서 테트리스하고 있으면 참 좋다.

사실 다른 걸 해도 좋다.

원래 바쁠 땐 9시 뉴스만 봐도 재밌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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