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죄가 없지만, 오늘 여기는 대나무밭이다.
최근 한 달 동안 네 명과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한 명은 내가 오랫동안 존경했던 분이다.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성급하게 수락했다가 거절했다. 버선발로 나가 반길 만큼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런데 사무실에 가보니 회사 사정이 어려웠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직원들을 곤란하게 하는 대표의 방관적 운영 방식이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파악하기로는 그 어려운 사정의 책임은 상당 부분 대표에게 있었다. 내가 그토록 존경했던 분에게.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착잡했다. 존경이 실망이 되고, 슬픔이 됐다.
한 명은 몇 년 만에 연락해서 엉터리로 일을 진행하더니 끝내 내 속을 뒤집었다. 몇 년 전에도 디자인 모두 끝낸 원고를 인쇄 날짜 임박해서야 1교만 보라고 해서 애먹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순서가 엉망이었다. 디자인 끝낸 원고로 1교만 보는 방식을 그동안 계속해 온 걸까? 게다가 교정을 마쳐 디자이너에게 보내고 나니 책의 특정 부분을 나더러 다시 쓸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일을 맡기는 순서도 황당하지만, 왜 나더러 쓰라는 건지. 추가로 요청하는 일이라고 했다. 돈 줄 테니 써 보라는 말. 내가 오케이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비 전문가인 내가 쓰면 안 되는 글이라며 거절했다. 아무튼 교정본 일에 대한 잔금을 받아야 속이 좀 편해질 것 같다.
한 명은 일을 소개해 줬으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글을 열심히 쓰지 않은 여행 작가다. 그 때문에 나는 좀 난처하기도 하고 황당하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 민감할 것 같은데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장문의 내 메일에 며칠 째 답장도 안 주고 있다. 카톡에도 대답이 없다.
한 명은 그 여행 작가를 소개받은 기획사 대표다. 작가와 직접 소통해야 할 일을 내게 모두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하고는 싶으나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내게 하는 것이다. 전화 통화가 힘들다. 이 작가가 써야 할 글은 모두 일곱 편이다. 대표는 샘플로 받은 한 편에서 크게 실망해 나더러 다시 써달라고 했다. 그래서 일곱 편을 내가 써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대표와 작가가 직접 만나 얘기하는 중에 작가가 다시 잘 써보겠다고 했단다. 내게는 묵묵부답이던 작가가 대표에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방향도 상의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한 셈인데, 그럼 나는 이제 놔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대표는 다시 쓴 글도 이상할까 봐 자꾸 나를 걸쳐 놓고 있다.
일보다 사람이 어렵다고들 한다. 나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황을 복기하며 개선점을 찾는 편이다. 결국 일하자는 것이니까. 연애하자는 거 아니니까. 감정을 불필요하게 낭비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합리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하지만 늘 깨닫는 건 사람 속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다. 또한 한쪽에서 그렇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상대도 그렇게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나와 입장이 다르니까. 그가 쓴 일기는 내가 쓴 일기와 다를 테니까.
이렇게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