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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by 대낮

내 글쓰기는 익명 게시판 재질이다. 언젠가 학과 카페 익명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한 동기가 내게 그 게시물은 분명 복학생인 OO오빠가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쓴 거라고 하자, 깜짝 놀랐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각이 많고, 표현은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편하다고 생각되는 자리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말이 많지만, 그렇지 않으면 입을 꾹 닫는다. 그러니 사람 많은 곳, 대놓고 말해 보라고 마련된 자리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흔한 소인배의 모습이랄까.


'대낮'이라는 이름은 이런 모습을 좀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지었다. 새벽에 자기만족으로 쓰는 글을 지양하고,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글을 지향하자. 넓고 사람 많은 데서 발표할 수 있는, 거리낄 것 없는 글을 쓰자. 조심하되 대범하자. 하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최근에 장강명 작가가 '오은영의 스몰토크 카페(오스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사연 당사자에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에요"라고 조언한 게 귀에 콕 박혔는데, 그 말처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굳이 밝히자면, 나는 장강명 작가에게 관심이 있고 오은영 박사에게는 관심이 없다).


일상적인 글쓰기의 목적은 원래 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자기만족을 위한 글로 흐를 수밖에 없다. 내가 열심히 조사까지 따져가며 쓰는 글은 돈을 받는 '일'이고, '이름이 필요 없는' 글이다. 그것에 자괴감이나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어갈 틈도 없다. 예전에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을 때도 수도승 같은 득도의 경지를 꿈꿨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한 작가는 오정희이고(아... 말년의 그가 어떤 평판을 받는지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면 더 좋았으련만), 한강이고, 전성태이다. 독서의 순간만큼은 그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만의 작가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작가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로할 나만의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출판의 현실을 좀 더 적나라하게 알게 됐고, 그때만큼 사는 게 외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마음에 맞는 편집자를 만났다. 다시 쓰자면, 몇 년째 알고 지내던 편집자와 얼마 전 마음이 맞았다. 일 얘기를 하다 과거 얘기가 나왔고, 알고 보니 우리 사이에 꽤 중요한 교집합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브런치 작가이고 브런치 대상으로 출간도 했다. 물론 나는 그의 책을 완독했고,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브런치를 구독하지는 않았다. 실명을 알면서 가명으로 활동하는 공간을 나만 보는 건 왠지 반칙하는 것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공개로 쓰는 글에 대한 지나친 조심인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작가들에게는 브런치가 그만큼 좀 내밀한 구석이 있다.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나더러 브런치 이름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서 '대낮'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글을 적는 내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왜, 쓰는 걸까. 왜 그 친구에게 계정을 공개하기 싫었을까. 내 지인 중에 내 브런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남편도 모른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알지만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는 내가 카카오스토리를 쓸 때도 그랬다. 남편의 속마음은 모르겠으나, 나는 그게 좋다.) 어젯밤에는 그 친구의 브런치에서 그가 과거에 쓴 글 몇 편을 읽었다. 역시나 글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반칙하지 않고 공정하려면, 나는 그에게 브런치 닉네임을 알려줘야 할까. 이제 진짜 '대낮'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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