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스토리도 발표 채널이 된다
이슈페이퍼 교정 보는데 참고 문헌이 꽤 많다. 한글 파일 10장 정도. 각종 뉴스와 문헌 자료가 줄줄이 쓰여 있다. 그중 출처가 브런치스토리인 게 두 개가 있다. 인터넷 글에서는 브런치를 출처로 적어 놓은 걸 종종 봤지만, 인쇄해서 발간할 예정인 이슈페이퍼에서는 처음 봤다. 브런치 작가가 쓰는 글은 의외로 다양하고, 그중에는 출판된 책에 실린 것보다 양질의 글도 종종 있다.
나는 이 두 브런치가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하나는 구독자가 9900명이 넘는 모 대학 교수의 인기 브런치다. 작가는 이미 그 방면 관련한 책을 출간한 인물. 다른 하나는 구독자 200명 미만의 한가한 브런치다. 작가 소개를 보니 현직 기자다. 그러니 그 방면의 전문가인 셈. 그러나 참고하고 싶은 내용을 그들이 공개한 채널은 브런치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런치를 출처로 할 수밖에. 재밌는 것은 이렇게 참고한 기사는 브런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으로 출처를 밝혔다. 저자가 닉네임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캐'라는 말을 쓰지만(부캐도 이제 너무 오래된 말인가?), 작가 세계에는 오래전부터 '필명'이 있었다. 글 쓸 때 사용하는 이름인데, 부담스러운 글을 쓸 때 익명 뒤에 숨기 좋다. 또 이름보다 더 그럴싸한 또는 글의 성격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지을 수 있다. 어떤 때는 내 이름을 빛내 줄 호처럼 쓸 수도 있다. 근대의 작가들은 '필명'이 무척 매력적이었는지 김동인, 심훈처럼 여러 개의 필명을 가진 작가들도 많았다.
내가 알기로 가장 많은 필명을 사용한 작가는 어린이날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방정환이다. 그의 필명은 무려 20개가 넘었다. 흔히 '소파'만 알고 있는데, 잔물, 몽견초, 목성, 은파리, 몽중인, 북극성, ㅈㅎ생, 길동무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잔물결, 물망초, 삼산인, 쌍S, CWP, 운정, 파영, 깔깔박사, SP생도 다 그의 필명이다. 자음만 쓴 'ㅈㅎ생'이라는 필명을 1930년대에 썼으니 시대를 앞서갔다고 해야 할지. 그가 이렇게 많은 필명을 쓴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잡지(제목이 <어린이>)를 만드는 데 필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잡지에 실린 대부분의 글을 적었고, 편집도 스스로 했다.
브런치는 요즘 시대에 누구나 방정환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누구나 무엇이든 쓸 수 있다. 브런치가 앞으로 살 길을 찾아 여러 궁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광고 없고 ui 깔끔한 브런치스토리의 장수를 기원한다. 쿨럭.
+
예전에 일 때문에 방정환 연구를 하는 박사님을 알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어린이> 잡지에 실린 독자 편지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픈지 모르겠다, 짧은 문구로 이렇게 사람을 울릴 정도로 당시 애들은 글을 잘 썼는지 의문이라고. 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편집자님이 잘 아실 텐데요? 방정환이 글만 잘 쓴 게 아니고 편집도 잘했거든요. 다 방정환의 손을 거쳤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헉! 그 순간, 나는 순수한 독자로서 배신감을 좀 느꼈던 기억이 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