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음을 찍어 주는 일

by 대낮

#1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며칠에 한 번 일기 쓰기가 숙제였다. 학교 선생님이 내준 숙제다. 아들은, 도대체 일기는 왜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글 쓰기는 싫어하고, 노트에 글씨 적는 것도 귀찮아서 흘려 쓰는 녀석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 사진은 왜 찍어?

- 내가 봤다는 증거.

그때 아들은 사진 찍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하굣길에 핸드폰으로 공원의 새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여 주곤 했다.

- 일기도 사진 같은 거야. 풍경이나 사람은 사진으로 찍지만, 그때 했던 생각은 찍히지 않잖아. 말이나 소리는 동영상으로 찍을 수 있어도, 생각이나 마음은 찍히지 않으니까. 그걸 적어 두는 게 일기야.

풍경을 사진에 담듯이 네 마음이나 생각도 글에 잘 담아 두라고, 네가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했는지 증거도 남기라고 했다. 아들은 그날만큼은 "아하!" 하고 바로 일기를 썼다.




#2

오래전 대학시절, 과제 때문에 어느 선배님을 인터뷰했다. 교수님이 내준 과제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인터뷰이로 선택한 분은 학과 선배님으로, 교수이며 문학평론가였다. 소설가 한강이 쓴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의 평론을 발표했다. 그때 한강은 내가 제일 관심을 두던 작가였지만, 내 과제 내용은 가짜였다. 나는 교수도 평론가도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 방황하는 청춘이 놀고먹고 쓰고 읽기에, 대학은 완벽한 울타리였다. 그래서 나는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았다.

인터뷰 이전에 딱 한 번, 과실에서 얼쩡거리다가 이 선배님께 밥을 얻어먹었다. 그때 중국에 있다는 '명사산(鸣沙山)'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졸업이 싫어 대학원을 궁금해하는 내게, 선배님은 학문을 계속한다는 건 모래로 된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일 같다고 말했다. 모래가 우는 산, 바람에 모래 날리는 소리가 마치 울음처럼 들리는 곳. 나는 쉽게 툭 던진 질문인데, 이 질문은 내가 말하기 전부터 선배님 마음속에 오래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이 날의 기억 때문에 나는 선배님이 궁금했다.

어느 지방 대학의 교수실로 선배님을 찾아갔다. 서울에서 가까운데도, 선배님은 나를 아주 멀리서 온 손님처럼 맞아주었다. 지방에 와 있으니 서울과 거리감이 느껴지고, 모교 소식도 늦는 감이 있다고 했다. 교수실 안은 온통 책이었다. 나는 쉬운 질문을 던졌고, 선배님은 오래 생각한 뒤 답변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선배님은 이렇게 말했다.

"폐가와도 같던 나를 찾아와 주어 고맙습니다."

명사산은 동서로 40여 km, 남북으로 20여 km에 높이는 1715m나 되지만, 산을 오른 사람의 발자국은 바람 한번 불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누가 모래 산에 발자국을 남기고 깃발을 꽂을까. 많은 사람에게 명사산은 발자국을 남길 수 없는 산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래 산을 오른 발자취는 한 발씩 내디딘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문양이 남을 뿐이다. 같이 오른 사람의 땀내와 함께. 누군가가 그에게 그 산에 왜 오르냐고 물어봐 준다면 어떨까. 어떻게 오르고 있느냐고. 힘들 땐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그가 스스로 묻고 내내 가슴속에 품고 있었을 답변을 글로 받아 적어 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인터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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