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함한 고슴도치

마포책소동

by 대낮

지난 토요일 홍대역 근처에서 열린 마포책소동에 갔다.

독립출판물 구경하고, 고슴도치 인형 만들고, 책 한 권 사서 돌아왔다.

그림책 "잔소리의 최후"를 그린 난주 작가님이 고슴도치 인형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헝겊으로 만드는 함함한 고슴도치다. 바느질하면서 들은 작가님 말씀이 인상 깊었다.


내가 두 시간 동안 만든 고슴도치 인형
인형을 만들 때 언제 갑자기 귀여워지는지 아세요? 그냥 헝겊이다가 눈 코 입을 그리면 귀여워져요.


눈 코 입이 생기면 인형은 사람과 닮게 된다. 그러니까 표정이 생긴다. 헬로 키티의 까만 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웃는 표정, 무표정, 삐진 표정으로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 얼굴을 늘 무표정으로 봤다. 내가 만든 고슴도치는 키티처럼 까맣고 둥근 눈이다. 하지만 입 덕분에 웃는 상이다.

나는 인형이 고슴도치답게 보이도록 코를 오뚝하게 만들려고 신경을 썼다. 고슴도치 인형을 만들면서 고슴도치다운 고슴도치가 되라고 생각한 게 참 아이러니했다.


아들은 이 인형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림책 속 캐릭터가 귀엽기 때문이다. 초등에게 '잔소리'는 무척 흥미로운 소재다. 평소 아들은 내가 빤히 바라보면 고개를 돌린다. 이유인즉, 엄마는 관심법을 쓸 줄 아니까.

엄마들은 아이의 마음 읽기에 능할 뿐 아니라 들키면 안 되는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 잔소리는 엄마의 이런 능력에서 나오는 것. 고슴도치 아들은 과연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까.

그림책 "잔소리의 최후" 중에서

손바느질로 만드는 인형이라 15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어서, 아들은 내가 인형을 만들어 오길 기다렸다. 아들은 다행히도, 이 인형을 보자마자, 마치 자기가 만든 것처럼 좋아해 줬다. 인형은 아들 방 책꽂이에 자리를 잡았다.


"딱 봐도 손바느질 인형 티가 난다. 그래서 더 이쁘지 않아?"


내가 묻자 아들은 다른 인형도 귀여운데 고슴도치는 다르게 귀엽다고 말했다.



내 눈에는 저 고슴도치가 다른 인형 사이에서 돋보인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아이랑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요리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시간을 재면서 만들었더니 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양배추, 달걀, 슬라이스 햄만 넣고 만든 샌드위치는 평범하고 맛도 밋밋했지만 아들은 무척 만족했다.


"어제 먹은 수제 햄버거만큼 맛있는데?"

"그래? 네가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응. 이건 엄마 고슴도치 같은 거야."

"오~. 음..."


어제 그림책 작가님이 그러더라 사람의 생명은 '제한된 시간'인데, 인형 만드는 데 그 시간을 썼으니 인형에게 생명을 나눠준 거라고. 그러니 인형도 생명을 갖게 된다는 거지.



"그럼 만든 사람 생명이 줄어든 거야?"

"생명은 가만히 있어도 줄어. 그 시간을 인형과 함께 보내면서 인형에게 생명을 준 거지"

"그럼 시간이 두 배가 된 거네?"


아들은 쑥쑥 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속마음 빤히 들여다보이는, 어린이가 아니다. 아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범위는 크고 넓어졌다. 이제 곧 내 관심법 능력은 사라질 것이다. 그에 맞게 잔소리도 줄여야 한다. 고슴도치 인형을 만들면서 고슴도치다운 고슴도치가 되라고 하기 어려운 것처럼, 내 뜻을 퍼부으면서 네 뜻을 펼쳐보라고 말하는 건 아이러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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