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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쓰자면

무선 노트에 줄을 긋듯이

by 대낮

부담이 크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요즘 준비하는 인터뷰 책 걱정이다.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니 마치 마감이 있는 것처럼 성실하게 하고 싶다. 그래야 하고.


생각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벽에 탁 부딪히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뭐였더라? 머릿속에서는 완벽했는데. 어느 때는 '쓰는 일'에 대한 생각이고, 어느 때는 '책'에 대한 생각이다. 불쑥 어느 작가가 생각나고, 그 작가가 붙잡고 있던 주제로 옮겨 갔다가, 다른 작가가 했던 한 마디에 오래 머물고는, 아차 밥 차려야지. 오늘은 뭐 먹지? 하고는 후루룩 생각을 삼켜버린다. 쓰는 일, 책 엮는 일이 익숙한 줄 알았는데, 어설프면 안 된다는 강박이 이렇게 발목을 잡는다. 아니 나도 모르게 자꾸 도망칠 궁리를 한다. 훌륭해 보이던 생각이 문장에서 적나라하게 액면가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피하는 것이다. 멈춰서 생각하자면, 어떤 책이 나오든 그게 지금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첫 책의 부끄러움을 무릅쓰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낼 수는 없다. 막막함을 이기기 위해 작업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었다. 전에 읽었던 책들인데, 기억이 절반밖에 없다(그래서 좋은 책은 사서 집에 두고 틈틈이 보라는 걸까). 날아간 기억에 황당해도 책을 고르는 마음은 좋다(역시 제일 속 편한 건 독자다). 글씨를 반듯하게 적기 위해 무선 노트에 줄을 긋듯이 어수선한 생각을 순서대로 한 글자씩 놓아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가 되려는 마음은 아니다. 굳이 내가 써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책의 원고를 다른 작가에게 부탁할 돈이 없다. 내가 지나가고 싶은 길을 대신 가보고 어떤지 말해달라 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쓴다. 디자인 맡길 돈이 없어서 인디자인을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윤준가 작가에게 독립출판을 왜 하냐고 물었을 때, 그는 별 망설임 없이 "독립출판은 비싼 취미"라고 답했다. 취미. 나 좋자고 하는 일이란 뜻이다. 그래 재밌겠지. 책을 내는 것도 여행 같은 것인지 복잡스런 마음속에서도 기대감이 순간순간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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