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집

에필로그만 남았다

by 대낮

여기까지가 힘들구나. 내가 편집자로서 평소 작가들에게서 받는 원고 정도로 작업해 놓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무엇을 어떻게 쓰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며 나아가는 과정에는 낚싯바늘 같은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 길을 가자니 종종 바늘에 찔렸고 걸려서 앞으로 못 나가는 일도 있었다. 작가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하구나, 깨달았다.

자료만 잔뜩 던져주고 혹은 자료도 부실한데 책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하라는 미션을 여러 번 받았었다. 비매품 책들은 주로 그렇게 만든다. 받을 돈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그건 이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일로 하는 것이고,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니까. 하지만 이번 책은 달랐다.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 그것을 이 문장에 담았느냐라며 스스로가 던지는 질문 앞에서 나는 계속 우물쭈물해야만 했다.

어쩌다 작가가 되는 걸까, 어쩌자고 골치 아픈 고생길로 뛰어드나라는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 된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거나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는 체념도 있었다. 체념이라고? 이 단어가 맞냐고 다시 묻는다면, 맞다. 2004년부터 출판계에 있었던 내게, 사실 출간 이야기는 이제 어느 정도 뻔한 스토리다. 세상의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40대 중반까지 살고 보니 그럴 것 같다고 짐작한 일이 들어맞는 경우가 늘고, 세상은 예외보다 뻔한 일이 더 많은 듯 보인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출산 얘기, 군대 얘기 같은 것도 하도 들어서 뻔하다고. 그런데 사실 그 모든 것이 결코 뻔하지 않다. 한 사람이 자기 삶에서 출산과 군대를 뻔한 일, 그저 그런 일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한 병원에서 하루에 수십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그게 모두에게 같은 의미는 아니다. 한국 남자라면 다들 가는 군대라지만 한 개인이 갑자기 총 들고 구르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출간은 분명 뻔하지 않은 일이다. 각자의 경험치는 크게 다르다.

그렇다면 나는 흔하고도 흔하지 않은 책 이야기 속에서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 이것이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어찌나 고민이 되던지 이 질문은 점점 더 외연을 넓혀갔다. 결국엔 삶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생이 그처럼 뻔하고 흔하디 흔한 것이라면 대체 무엇에 의미를 두고 한 평생을 살아가야 할까. 책 쓰면서 이 고민의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은데,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삶 속에서 그 고민을 책 쓰기에 대한 성찰과 맞닿게 한 일곱 작가들을 만난 것은, 나의 혜안 덕분이라기보다는 우연히 만난 행운에 가까웠다.

일곱 명의 작가들이 전해준 여러 목소리는 내 침대 밑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러다 어느 날 잠들려 하는 내 머릿속에 한 마디씩 툭툭 떠올랐다. 그러면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쓰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진짜 그 말의 의미인지 점검했다. 그리고 썼다.

쓰다 보니 알게 됐다. 그래 이 고민이었지. 왜 쓸까, 작가들은 왜 쓰는 방법을 택했을까가 궁금했었지.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출간의 이유보다 쓰는 이유를 찾으려 애를 썼다. 책 내는 마음보다 한 가지 주제를 붙들고 고민하는 작가들의 마음을 짐작하려고 했다. 신인 작가들도 다 안다. 지금 작가가 되는 일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속에 한 권을 던져 넣는 흔하고 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쓰는 데는 다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그 책들과 '내 책'의 차이가 뚜렷할 것이다. 어떤 작가는 쓰는 이유를 잘 찾아낸다. '그래서' 쓴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그 이유가 필요 없기도 하다. 이미 쓰고 있으니까. 쓰고 있는 사람에게 써야 할 이유라는 게 다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이번 인터뷰책을 읽는 독자들이 '이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이유가 필요한지, 이유가 이미 있는지, 혹은 이유 따위 이미 상관이 없는지.

책 완성까지는 절반쯤 온 걸까. 이제 깨끗한 종이에 담아 따뜻하게 표지를 둘러 내놓을 궁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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