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책 초교를 들고 있다. 아직 이전 책 마감이 안 끝났는데, 이 책도 급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 원고는 교정 교열이 아니라 원고 정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뭐가 다르냐고? 음... 글쓰기에 비유하자면, 말을 글로 쓴다고 치자. 생각나는 말을 일단 적어 놓는다. 그건 '하고 싶은 말'이지, 논리적 흐름을 갖춘 글이 아니다. 글쓴이는 이 말은 앞으로 저 말은 뒤로 옮기고 읽어보며 빈 곳(머릿속에서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던 부분)을 채운다. 그렇게 순서를 갖추면 한 편의 글이 된다.
원고 정리도 비슷한 순서를 거친다. 한 권의 책에 들어갈 원고가 있다. 저자가 왕초보가 아니라면 아마도 몇 가지 주제로 몇 묶음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그 묶음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묶음의 덩어리가 크면 쪼개고, 부족하면 작가에게 추가를 요청한다. 묶음 안에 있는 글 중에서 따로 뺐으면 하는 내용은 뺀다. 작가가 베테랑이라서 정리를 완벽하게 해서 준다면 편집자는 일이 좀 줄어들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작업은 편집자의 눈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는 작가의 글을 독자가 끝까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작가의 말을 잘못 알아듣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제1의 독자로서 먼저 읽어보고, 작가와 소통하여 다른 독자들은 술술 읽도록 돕는다.
글 덩어리가 크면 소화가 어렵다. 편집자는 글을 소제목을 붙여 가며 쪼갠다. 책을 한 권 읽는 건 지루한 일이다. 뇌만 즐거우면 뚝딱 해내는 일이지만, 온몸이 가만히 있는데 뇌를 즐겁게 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니 작은 덩어리를 주고 다음 덩어리를 읽을 마음이 들게 소제목으로 꼬셔야(?) 한다. 응? 이건 뭔데? 하면서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덩어리도 읽다가 지루할 수 있다. 종이 위에 글씨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사진이라도 한 장 있으면 단박에 그쪽으로 눈이 간다. 그러니 그 사진은 책에 대한 관심이 커질 만한 사진이어야 한다. 원고 정리하면서 어떤 사진이 필요할지 체크해 둔다.
글을 계속 읽다 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책을 좀 읽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다가도 깜빡 조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포인트를 짚어주면 좋다. 핵심만 발문으로 뽑거나 글씨에 색깔을 입혀줄 수도 있다. 김치는 맛있는데 양념 많은 건 싫어하는 어린아이를 위해 김치의 양념을 젓가락으로 슥슥 긁어내고 작게 잘라 밥 위에 얹어 주는 것처럼.
책에 실리는 것처럼 꼴을 다 갖춘 이후에 장제목과 소제목과 단락 구분과 부록 내용까지 갖춘 이후에 교정교열로 넘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세부적인 정보 확인과 원고에 대한 수정이 또 치열하게 이뤄진다.
다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적고 싶어 한다. 그게 편하니까, 또 쓰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니까.
생각은 머릿속에서 나와야 비로소 질서를 갖기 마련이다. 나온 말이 활자를 만나면 글이 되고, 글이 위에서 말한 과정을 모두 거쳐 책이 되면 그때는 '팔리는 말'이 된다. 말이 글이 되는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다. 글이 책이 되는 과정은 논리의 과정이다. 그러나 책이 돈이 과정은 소리 없는 전쟁 같다(안 팔리니까). 돈과 교환된 책이 다시 독자에게 치유의 도구가 되려면... 일단 모두 읽혀야 한다! 편집자의 고민은 모든 과정 위에 점점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