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읽히지 못하는 시절이다. 책 입장에서 그렇다. 액세서리로서의 책만 남았나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책은 "방송에서 소개된 유명한 책을 내가 펼쳐봤다"는 정도의 대화를 하는 데 쓰이는 작은 액세서리일 뿐이다.
누구나 책을 끝까지 잘 읽을 수는 없다. 게다가 책 사는 데 돈을 쓰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땅에서 시작한 식재료로 시작해 갖은 노력과 수고를 담은 음식도 남기고 버려지는 세상에서 이게 뭐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다. 그렇지만 가끔은 일부러라도 책을 샀으면 한다.
집 앞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데, 인터넷으로 사는 것보다 비싸다. 투덜투덜하며 사곤 하지만 나는 그 가게에 종종 간다. 집에서 최단거리에 있는 슈퍼가 없어지면 내가 불편할 테니까. 동네에 하나 있는 서점도 그래서 간다. 거기를 지키고 있어 주는 데 대한 최소한의 대우랄까.
책 한 권을 만들자면 여럿이 고민의 고민을 더하고, 정성을 다한다. '저자가 글을 써서 주면 출판사에서 글씨 틀린 거 바로잡아 표지 입히는 데 그렇게 고민과 정성을 쏟을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초고가 차지하는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그림자 노동'은 잊히기 쉽다.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보면서 공장의 치열함을 상상하지 못한다. 엄마가 해주는 반찬을 먹으면서도 그렇다. 맛이 일 번이다. 엄마의 무릎과 손목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릎과 손목은 생각하더라도 메뉴 구상과 재료 준비, 요리까지에 걸린 엄마의 시간과 각 단계의 고민과 수고를 알 수 없다.
수고와 노력이 언제나 모두 인정받기는 어렵다. 디자이너가 본문 레이아웃을 몇 번 지적받아 뒤엎고, 다 그려 놓은 일러스트를 쓰지 못하고, 번역자와 편집자가, 편집자와 교정교열자가 저자의 불완전한 문장 한 줄을 두고 머리를 싸매며 신경질을 부려도 휘리릭 만든 책과 마찬가지로 창고에서 썩거나 그 자리마저 비워줘야 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종이에 문제가 있어서, 인쇄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 홍보 방법을 두고 싸움이 나서 홍보팀에서 사표를 내던지는 일이 있었대도 마찬가지다. 냉정하게도 책은 독자에게 읽히지 못하고 어둠 속에 남을 수 있다.
수원 성균관대역 근처에는 맛집들이 많다. 언덕진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있다. 떡볶이를 먹으러 네 명이 들어갔는데, 떡볶이마다 맛있어 보였다. 네 명은 메뉴를 통일하지 못했다. 키오스크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먹기에 넘치고 남을 만큼 주문해 버렸다. 주방에서 사장인 듯한 주방장이 나와 말했다.
"저희 음식이 적은 편이 아니라서요. 좀 많을 듯한데, 맞게 주문한 게 맞나요?"
우리는 멋쩍어 하며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음식은 다 맛있었다. 주방장 말대로 양도 많았다. 우리는 다들 과식을 해서 배가 빵빵해진 채로 다음에 여기 또 오자며 식당을 나섰다. 다시 주방장이 나와 우리 옆으로 왔다.
"저희 가게가 이번 달까지 하고 문을 닫아요."
작은 가게라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들었을 테고 행여나 우리가 다시 찾았을 때 헛걸음할까 봐 알려주신 모양이다.
"맛있는데.... 왜요?"
"고맙습니다. 이곳이 워낙에 식당 경쟁이 심해 살아남기가 어렵네요."
우리는 안타까워하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다시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그리고 음식에 만족한 우리의 칭찬을 들을 때 주방장의 속이 어땠겠나 생각하니 찡했다.
어쩔 수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노력과 수고를 생각할 때면 그 안에서 무엇을 붙잡고 애써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을 보면 평생 돌을 고르고 고르다 그대로 삶이 끝나는 사람이 나온다. 그냥 돌인데,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것이다. 내가 매일 고르는 돌은 뭘까. 결국엔 신중과 정성을 다해 돌을 고르는 그 마음이 남는 것 아닐까. 어딘가에 '마음' 박물관이 있다면 그 마음들이 희귀한 전시물처럼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맛있었던 그 떡볶이집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 박물관은 누군가의 기억 속일 수 있고, 내가 떡볶이집을 글자로 적는 것처럼 책의 한 페이지일 수 있다. 그마저도 그냥 사라질 뿐이라고 하면, 마치 사후세계는 없고 심장의 정지가 한 생의 끝이라고 하는 것처럼 허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