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주님 품으로 가시고 다시 찾아온 추석….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모이지도 못했다. 엄마가 계시지 않은 고향 집과 갯새암…. 뒷마당에는 엄마가 심어 놓은 고추와 깻잎, 가을 대추가 익어 가고, 갯새암의 물은 여전히 솟아나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동생들은 아무도 오지 않고, 바로 밑의 동생만 잠시 들렀다 갔다. 정부에서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성묘를 권해서, 정말 썰렁한 추석이 되었다. 엄마가 계시지 않은 빈 시골집. 가끔 언니가 와서 관리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온기가 없는 시골집은 춥고 썰렁했다
.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에는 엄마의 손때가 묻어 있는 항아리들이 얌전히 줄지어 앉아 있었다. 항아리 안에는 엄마가 담가 놓으신 된장과 고추장이 주인도 없이 익어 가고 있었다. 함께 모였으면 엄마가 끓여 주는 칼국수에 들어갈 애호박들이 아무도 따가지 않고 담장 위에 달려 있었다. 작년 가을 그렇게 많이 달렸던 대추는, 올해는 주인이 없는 줄 아는지 많이 열리지 않았다. 석류나무와 나란히 키 재기를 하며 고향 집을 지키고 있는 대추나무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다들 모였으면 웃고 떠들며 동네를 휘젓고 다녔을 텐데… 혼자 풀 죽어 마을을 기웃거리며 걸어 다녔다. 엄마가 농사짓던 고구마밭에 들러 잠시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렸다.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갯새암에 와서 우두커니 서 있다. 고구마밭에 가셨다가 갯새암에 들러 손을 씻고 물을 마시며 동네 어르신들과 두런두런 얘기하셨을 엄마를 떠올려 본다. 샘물 위로 비치는 저녁 햇살에 작은 눈물방울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다.
갯새암 내 어머니의 샘….
비록 엄마는 떠나셨지만 이 샘은 여전히 솟아나 흐르고 있다. 차갑고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이제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함을 느낀다. 언제까지 슬픔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엄마가 기뻐하실 리 없다. 이제 그만 일어나 또 담담히 남은 인생길 걸어가라고 이 샘은 나를 등 떠밀고 있다.
엄마가 주님 품에 가시고 한동안은 나도 많이 아팠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덩달아 아팠다. 아프지 않고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담낭을 떼어내고 EBM 섭생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엄마가 주님 품으로 가시고 한동안 아팠지만, 전반적인 내 몸의 상태는 1년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몸무게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도 모두 정상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피부라 할 수 있겠다. 늘 위열이 얼굴로 올라와 홍조와 좁쌀 같은 여드름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매끈한 피부가 되었다. 또한 담낭 수술 부위가 아프던 증상도 내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지만 않으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살면서 가끔은 음식을 가려 먹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육식을 하면 항상 속이 불편한지라, 평소엔 거의 과일이나 야채가 주식인데, 명절이거나 지인들과의 회식이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먹어야 할 때가 있다. 육식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수술 부위가 아파져 온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왜 그 부위가 특정 음식만 먹으면 아파 오는 걸까?
아마 내가 EBM 섭생을 몰랐다면 참으로 답답했을 것이다. 가끔 그 부위가 너무 아파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건강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따라 우리 몸의 반응을 조금만 신경 써서 체크해 보면 아주 단순한 원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현재와 같은 팬데믹 시대에, 사람들은 다 누구나 건강에 대한 불안을 조금씩 안고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아직 백신도 출시되지 못했고 특정 치료약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증상에 따라 대처해 나가는 치료 현실을 볼 때,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몸의 면역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내 몸이 요구하는 음식을 잘 찾아서 먹고 소식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필요하다.
하늘의 부르심으로 엄마가 떠나신 후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에 EBM 섭생이 필요할 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섭생이 필요했다. 특히나 준비되지 못한 이별을 겪으며 영원 안에서 다시 엄마를 만날 소망을 가지면서도, 지금 보이지 않는 엄마의 부재를 감당하기가 힘이 들었다.
엄마의 일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젊은 나이에 가족을 남겨 두고 먼저 가신 아버지의 부재 안에서, 그 긴 세월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우리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도 엄마의 삶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은혜들은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엄마의 삶의 무게는 조금도 덜어 드리지 못했다. 3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여섯 명의 딸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이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항상 우리에게 당당한 여장부의 모습을 보이셔서 엄마는 원래 그렇게 강인한 분인 줄 알았다. 노년에 당뇨와 고혈압으로 고생하실 때도 늘 그랬듯이 병마를 이기고 우리 곁에 한없이 계셔 주실 줄 알았다.
물론 하늘의 부르심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 건강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다고 하늘의 정하심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엄마에게 해 드리지 못한 많은 일들을 생각할 때 너무나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