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요즘같이 마음대로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고
사람 사는 정이 그리울 때면 가끔씩
응답하라 1988을 찾아서 본다.
원래 이 드라마가 방영될 댄 보지 못했고
우연히 제자가 가지고 온 혜화동이라는 곡을
연주하다가 유튜브에서
이 드라마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방영된 지 아주 오래된 드라마인데.
내용이 너무 따뜻해서 결국 시리즈로 다 보았다
쌍문동 한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 놓았는지...
그래서 가끔씩 사람이 그리울 때 이 드라마를
다시 한번씩 보곤 한다.
1988년 그 시절의 나의 삶도 둘리 일당처럼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지나왔다.
결혼 전 광안리에서 살 때의 이야기다
음악학원에서 피아노 강사를 하며
자취를 할 때 늘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이웃분들이 계셨다
그다지 튼튼하게도 안 생겼고 체구도 작은지라
유난히 주위 사람들은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오늘은 찬희네 가족을 떠올려 본다
나보다 나이는 조금 더 어린 찬희는 늘 자취하는
나를 언니처럼 챙겨쥬었다
집에서 맛있는 반찬이라도 하면 꼭 길 건너
내 자취방에 살짝 가져다 놓곤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나물무침이나 어묵볶음이 담긴 반찬통이 문 앞에
얌전히 놓여있어 내 피곤을 씻어주곤 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한 장면이 내가 살던
1988년 광안리에도 똑 같이 펼쳐지곤 했다
그 시절은 학부모님들도 시장을 가시다가 빼꼼히
문을 열고 들여다보시며 사과 한두 개 푸성귀
한 봉지를 슬며시 놓고 가던 때였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오니 작은 냄비에 담긴
닭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희 어머니께서 닭을 한 마리 고았는데
내게 가장 맛있는 닭다리 하나를
챙겨주신 것이었다
작은 메모와 함께 따뜻이 놓인
냄비를 들고 막 방으로 들어가는데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작은 보자기를 손에 든 찬희였다
"오늘 우리 집에 닭 한 마리 삶았지롱...
그래서 내가 엄마 몰래 좀 챙겨 왔지롱
ㅎㅎㅎ"
"엥?"
노란 냄비 안에는 또 다른 닭다리 하나가
떡 누워 았었다
"아니 닭다리 다 내게 가져오면 어떡해
엄마도 닭다리 하나 가져다 놓으셨는데..."
"아이구야 ㅋㅋㅋ"
우라는 두 냄비를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엄마한테 혼나면 어떡해?"
내가 걱정하자 찬희는 말한다
"괜찮아
우리 엄마도 나 몰래 닭다리 하나 가져다
놓았는데 뭘...
여기 같다준건 혼 안내 ㅎㅎ"
"그럼 이거 같이 먹고 가"
찬희는 손을 흔들며
"아냐 이거 먹고 몸보신해
꼭 혼자 다 먹어야 해"
찬희는 닭다리가 담긴 냄비를 나에게
넘겨주고 얼른 돌아서갔다.
그날 찬희네가 가져온 닭죽과 두 닭다리는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이렇게 셋
이서 앉아서 먹었다
찬희네도 대식구인데 닭다리가 빠진
닭죽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을게다.
나는 지금도 닭죽을 보면 그날 내게로
온 닭다리를 떠 올리며 웃는다.
그리고 닭 한마를 고아서 가장 맛있는 닭다리
를 다 내게로 가져다준 찬희네가
눈물 나게 그립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