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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Jun 04. 2021

그 옛날  찬희가  내게로  왔다

응답했다 1988



출근길

송정 철길공원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열심히 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혹시나 학부모님일 수도 있어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예요..."

"...... 누구세요?"

전화 속 목소리는 밝고 유쾌했다.  누굴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주위에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떠 올려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찬희예요 ㅎㅎ"

"누구? 성찬희? "

"네 ㅎㅎ"

세상에...

진짜 찬희였다.


30년 전의 찬희가 내게로 전화를 했다.

포항으로 시집간 찬희는 신혼 때는 가금 연락도 했는데 그 후 소식이 끊겨 오래도

록 만나지 못했다.

네이버에 올라와있는 내 책을 보고 사서 읽고는  한줄평까지 적어 내게 카톡으로 보냈다


코로나 시대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직도 조심스러웠지만 우린  무조건 만나기로

했다. 며칠 후 찬희는 포항에서 차를 몰고 경주로 오고 나는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갔다.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가는 길...

오늘 만나면 맛있는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 줘야지

선물도 미리 준비할걸... 기차 시간이 촉박해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빈손으로 기차를

탔다.  경주빵이 유명하니 가서 사줘야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찬희는 어떤 모습일까? 광안리에서 한동네에 살며 내 자취방에 반찬

을 가져다 놓던 그 찬희..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늘 웃음이 가득한 찬희의 모습이 눈에

아련거렷다. 날 몰라보면 어떡하지..

.

내 걱정과 달리  경주역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찬희는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우린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찬희다!  찬희가 맞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옛날의 찬희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마치 어제 보고 오늘 다시 본 것처럼 전혀 낯설지가 않다

찬희는 나를 차에 태우고 정원이 예쁜 한정식집으로 데려갔다.

일단 밥부터 먹고 보문단지에 가자며....

식당에 앉아 우린 마스크를 벗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시 웃었다.


찬희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밝고 통통거리던 찬희는 조금  더 여유 있어 보였지만

30년이 지났는데 21살 찬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창밖 풍경이 예쁜 작은 방에서 우린 색이 예쁜 한정식을 먹었다.

찬희는 그 옛날처럼 내 앞으로 맛있는 반찬을 가져다주며 언니처럼

나를 챙겼다.


밥을 먹으며 찬희는 살아온 기들을 들려주었다.

밝고 유쾌한 찬희의 모습 뒤에는 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었다.

몸이 아파 수술도 하고  혼자되신 친정어머니도 가까이에서 모시며

돌봐드리고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겪는 온갖 일들이 찬희에게도 비켜가지 않았고 그 한가운

데를 통과해서  오는 중이었다. 찬희를 보며 또 나를 보았다. 작년 한 해

너무도 많은 일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힘들었던 내 삶을 버거워하고

슬픔 가운데 허우적대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시 목이 메었다.


찬희에게도 나에게도 세월의 흔적이 비켜갈 순 없었지만 그래도 밝은

찬희의 얼굴을 보며 브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나루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한 후

결국 주님은 야곱을 이길 수 없음을 아시고 그의 가장 강한 부분을 치셨다.


그가 브니엘을 통과할 때 해가 떠 올랐고 그는 부서진 자의 표징인 다리를 절며

걷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강한 자아가 그 브니엘을 통과할 때 부서지고

있었다.


찬희도 나도 야곱처럼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격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기까지 우릴 통해 그분의 인격이 흘러나올

때까지 그분은 우리의 가장 천연적이고 강한 부분들을  고난과 각종 환경을

통해 다듬고 완성해 가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우린 보문단지로 갔다.

찬희는 살면서 힘들 대마다 이 호숫가 벚꽃길을 찾아 걸었다고 했다

월요일이라 비교적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 우린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까르르 웃고 떠들며  3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날 찬희는 내가 기차 안에서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 내게 해주었다.

점심도 찬희가 사고 나를 위해 경주빵도 미리 사서 차 안에 넣어두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찬희는 나를 챙기는 것에 1등이다


짧은 만남...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린 또 각자의

삶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기차를 타고 다시  해운대로 내려오는 길...

경주빵을 든 손이 부끄럽다.

그 옛날 찬희네 식탁에 올라야 할 닭다리가 내게로 다  온 것처럼 찬희 손에

들려 있어야 할 경주빵이 내손에 들려 있다.

흠....

난 언제 이 신세를 다 갚지?

고마움과 미안함이 내 마음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기차는 어느새 해운대

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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